수연 씨는 어디쯤 왔을까.
지금쯤이면 적어도 한 번은 울렸어야 할 핸드폰이 조용하기만 하다.
지난번처럼 수연 씨도 오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
그러다 세상 여자 다 만나겠다 우스갯소리를 들을 정도로 필규는 소개팅에 진심이다. 벌써 몇 번째 소개팅인지 세어보는 것도 의미 없는 일이 되었다. 온 에너지와 정신을 끌어다 씀에도 별다른 수확은 없지만, 언젠가는 자신과 딱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순정남이기도 하다.
때는 6년 전, 서울 외곽 쪽 '소개팅 맛집'으로 분위기 좋은 브런치 카페에서의 일이었다. 몇 개월째 별 소득 없는 소개팅만 전전하던 필규에게 무역팀 상사 M이 강력 주선한 소개팅 자리이기도 했다. 사람 외모는 절대 보지 않고, 오로지 인성과 품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 말하는 여인이라 했다. 실제 나이보다 7살쯤은 더 되어 보이는 외모에 부끄러운 아재 개그만 던지는 흡사 순박한 시골청년 같은 필규는 M의 말에 화색이 돌며 이번 소개팅만큼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한 찰나였다.
M은 자신을 잘 따르는 것은 물론 성실하고 능력 있기까지 한 필규에게 늘 마음이 쓰였다. 괜찮은 조건의 여성을 필규에게 소개해주면서도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쓴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필규 씨, 이번에 소개해줄 분은 나도 건너 건너 연락받은 건데 외모나 이런 건 크게 안 본대. 그러니까 자신감 가지고. 아, 그리고 제발 소개팅 나가서 그 아재 개그 좀 하지 말어. 오히려 필규 씨 같은 사람한텐 더 마이너스라니까? 알겠지?
네 팀장님, 이번에는 꼭!
사실 필규는 워낙에 또 패션 센스도 없던지라 모 커뮤니티에 '소개팅 복장 봐주세요' 글로 화제에 오른 인물 중 하나였다. 집에 널브러진 티셔츠와 다 찢어져 무릎이 튀어나올 것 같은 희한한 청바지를 입고 사진을 올렸는데 댓글창은 그야말로 불난 집 그 자체였다. 노력은 하는 데 따라주지 않는 센스를 불쌍히 여긴 사람들은 필규의 형, 누나를 자처하며 의류 판매 사이트 링크를 던져주었고 #필규의 소개팅 전용 복장 리스트에 힘을 실어주었다.
- 나 40대 여자, 제발 이대로만 입어. 그럼 반은 간다
- 형 소개팅 성공률 100% 임. 알잘딱깔센으로 알려준다. 소개팅은 무조건 깔끔해야 함. 지금 전달한 사이트에서 #늘어남 없는 화이트 티셔츠 #베이지 핀턱 코튼팬츠 일단 이거 두 개 사셈.
첫 문장 출처: 여름밤 해변의 무무 씨 / 조해진
"당신이 오늘 읽은 첫 문장은 무엇인가요? 살포시 두고 가시면, 이어가보려 합니다."
#여름밤해변의무무씨 #조해진 #11월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