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어떤 객관적인 사실이나 사건에 대한 보고서가 아니다. 하지만 어쩌면 한 사건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속삭임이 나열된 비밀스런 보고서쯤으로는 해석할 수 있을듯하다.
때는 바야흐로 약 3개월 전의 일이다. 취업 가능 연령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밟고 지나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이 회사에 많은 인력이 드나들었다. 요즘같이 제 호불호가 확실한 데다가 워라밸이 없으면 회사로 취급조차 않는 MZ 세대의 저력이 밥 먹듯 쉬운 입퇴사에 한몫을 더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밑바닥에 얕게 깔린 충성심 따위를 애써 끌어올려 회사에 평생토록 몸 담을 이는 없어 보이는 시대가 되었다.
가장 최상의 상태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며 다짐했던 것도 잠시 1년이 흐른 지금, 서른여 명이 내 옆을 훑고 지나갔다. 떠나는 이들을 붙잡고 싶은 마음은 갈수록 짙어지지만 그 마음이 짙어질수록 이들의 얼굴엔 살기 어린 눈빛과 어둑한 어스름이 깔렸다. 씻을 수 없는 시커먼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해 이별을 선택한다면,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씁쓸한 표정을 애써 가리는 것뿐이었다.
잘 묶여 탄탄했던 커다란 배가 이제보니 비루한 뗏목이 되어 방향을 모른 채 항해하고 있다. 다 찢어진 깃발 틈 사이로 새어드는 바람에 아슬하게 흔들리는 뗏목은 갈피를 점점 잡지 못한다. 조금만 움직여도 나가떨어지는데 자칫 거센 파도에 휩쓸려 큰 바위에 부딪혔다간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나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을 전전하고만 있다. 바다인지조차 짐작할 수 없는 이곳에서 과연 나아갈 수나 있을까?
물 위를 동동 떠다니며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또 하염없이 누군가가 오길 기다린다. 조금만 버티면 괜찮아지겠지, 금방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끈끈하게 묶였던 끈은 어느새 느슨해졌고, 아슬하게나마 서로를 붙들어 잡은 이들과 간절한 마음으로 선장을 기다린다. 한 번만이라도 힘차게 전진할 수 있는 우리의 모터가 되어줄 그런 캡틴을.
철썩이는 파도와 요동치는 파동에도 쉼이 있다고 했던가. 잠깐의 고요함을 되찾을 무렵,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왔다. 팔다리 다 떨어져 나가기 일보 직전인 우릴 구해줄 이가 곧 모습을 비출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적 소식이. 이번만큼은 자신 있다며, 이번 캡틴만큼은 우릴 앞장서서 진두지휘할 수 있는 그런 유명무실한 사람이라 했다. 신과는 좀 데면데면한 사이임에도 '신이시여'를 몇 날 며칠 동안 울부짖었더니 제법 안쓰러웠는지 소원 하나쯤은 들어주신다 싶었다. 참으로 감사했다.
걱정과 기대가 한데 모여 은근한 긴장감을 자아내며 그녀가 오기로 한 날, 디데이가 되었다.
첫 문장 출처: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당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살포시 두고 가시면, 이어가보려 합니다."
#죽음의수용소에서 #빅터프랭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