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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창환 Oct 02. 2019

15. 이라크, 그린존 (10)

[ 돌입한다. 스내치, 스내치, 스내치. ]


닥터 왓슨이 카메라에 잡혔다. 4명의 인원이 동시에 차문에 접근했고 최루탄을 손에 쥐어 들었다. 운전석과 조수석의 창문을 깨고 투척을 개시, 적들이 제 발로 나오게 만든다... 닥터 왓슨은 차량 유리를 깨긴 깨는데 다른 방법을 채택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그는 창문에 가옥 돌파용 폭탄을 설치했다. 저게 근접 거리에서 터지면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은 고막이 몽땅 터질 테지만 그걸 노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닥터 왓슨이 폭탄을 설치할 동안에도 그들은 꼼짝 않고 있었고 그 기묘한 장면은 결국 닥터 왓슨이 안정적으로 폭탄을 설치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유지되었다.


[ 설치 완료. 개시. ]


닥터 왓슨은 스위치를 격발함과 동시에 상체를 깊숙이 숙였다. 고주파를 통해 유리를 부수는 돌파 장비도 있었지만 도시 지역이 아닌 야전인지라 돌파용 폭탄이 있는 것도 다행이었다. 창문이 터져 나가고 그 즉시 그린팀이 쇄도했다.


[ 엎드려, 엎드려! 움직이지 마! ]


아랍어와 영어가 난무하며 통신 채널을 가득 채웠다. 충격이 가시기 전에 적을 차량 밖으로 끄집어내지 않으며 무용지물이고 반격마저 당할 수 있으니 그린팀으로써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첫 번째 차량을 무력화시켜야 했다.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노딩턴 대위에게 그때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 뭐야! 이 사람들은! ]

[ 그린팀, 상황 전파하라. ]


닥터 왓슨의 혼란스러운 목소리와 총소리는 동시에 일어났다. 두 번째 차량의 앞유리창이 번뜩였고 그린팀의 몇몇이 쓰러졌다. 닥터 왓슨과 첫 번째 차량 습격조가 그대로 몸을 돌려 두 번째 차량을 향해 일제 사격을 가하는 장면이 이어졌고 하인드 측에서도 공격 보고를 전달해 왔다. 그 순간 노딩턴 대위는 몇십 분의 1초였지만 멍해졌다. 동시에 그의 판단을 요구하는 상황...


[ 스페이드 1-1, 공격 중지. 지상팀이 맡는다. ]

[ 확인, 지시 대기, 이상. ]

[ 그린팀, 상황 보고. 상황 보고. ]

[ 디코이다! 젠장! ]


디코이, 유인체... 노딩턴 대위는 그 단어만 듣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가만히 있을 적에 대해 선택권이 하나밖에 없다. 하지만 걸어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적들은 첫 번째 차량에 민간인 혹은 협력자들을 태웠을 테고 그쪽으로 유인했다. 지금 상황이 그 결과다. 노딩턴 대위는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 젠슨! 젠슨! 정신 차려! ]

[ SATCOM, 아이린에서 전달. 매복 공격에 의한 아군 부상 다수. 즉시 후송 헬기를 보내달라. 이상. ]

[ 확인, 경상자는 CAT 팀이, 중상자는 AMF 팀에게 담당. AMF 팀의 OPCOM 권한 부여. ]

[ AMF, 응답하라. TAC-C 아이린의 OPCOM에 따른 후송 요청이다. ]


쓰러져 있는 그린팀 일원과 그들을 치료 중인 팀원들의 모습이 부산하게 화면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닥터 왓슨은 두 번째 차량에 접근해서 조심스럽게 수색을 진행했다. 그 와중에도 일제 사격을 가해 공격을 해온 적을 완전히 침묵시키는 데엔 성공한 모양이었다.


[ 아이린, 아이린. 듣고 있나? 신분 확인 요청이다. ]


두 번째 차량을 수색하던 그린팀이 그 말과 함께 사진을 전송했다. 그제야 노딩턴 대위는 박사가 2순위 목표였던 걸 기억해 냈다. 당연히 확보해야 할 목표를 순간적으로 놓치고 있었던걸 루 중위나 자신이나 눈치도 못 채고 있었다. 그제야 노딩턴 대위는 이 작전의 관제를 얼마나 허술하게 했는지 체감했다. 아군이 다치는 건 곧 지휘관의 무능함이라고 생각했던 만큼 이 죄책감은 오래갈 것이다.


[ K-64, 아이린에서 전달.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분석 가능하십니까? ]

[ 확인, 확인. 패키지 외에 다른 현장 정보도 필요해요. ]

[ 그린팀, 은행에서 패키지 외에 다른 정보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

[ 알겠네, 계속 찍어 보내지. 후송팀은? ]

[ CAT 팀입니다. 육안으로 그린팀을 확인하였습니다. 03시 방향으로 접근합니다. ]

[ 알겠네, 착륙 지점을 신호탄으로 표시해 주지. ]


민간단체에 대한 군사적 지원은 범법 행위로써 UN 감시 하에 전범으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 끌려갈 사항이었지만 지금에 이르러 그걸 지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노딩턴 대위는 최대한 현재 상황을 빨리 정리하고 싶을 뿐이었다. 부상자로 판별된 지상조가 출동 인원의 3분의 1에 이른 만큼 더 이상의 돌발 상황에서 그린팀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게 된다. CAT 팀 일원으로 파견될 병력의 수는 겨우 4명. 후퇴할 때까지 그린팀과 CAT 팀으로 구성된 총 18명이 상자를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 게 현재 상황이었다.


[ 그린팀, 그린팀. 상자 확보가 가능한가? ]

[ 대기. 트렁크 뜯고 있다. ]


그린팀의 리더, 닥터 왓슨은 계속해서 첫 번째 차량에 실려있을 장난감 상자를 확보하기 위해 분투 중이었다.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 속에서 그는 트렁크 문에 아까와 같은 돌파용 폭탄을 설치하고 있었다. 차문을 차분히 열어젖힐만한 상황이 아니었으니 강경책을 쓰는 그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 폭파, 폭파. 폭파. ]


흰 연기와 함께 트렁크의 이음매 부분이 폭발로 날아갔고 동시에 트렁크는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노딩턴 대위는 드론이 관측한 생물학적, 화학적 위험 수준을 재빨리 살펴보았고 모두 정상적이라는 걸 확인했다. 닥터 왓슨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상자를 차량에서 내리는 작업에 착수했고 그 사이 도착한 CAT 팀은 부상한 그린팀의 일원들에게 간단한 응급조치를 취한 뒤 헬기에 실어 이송시켰다.


[ 그린팀에서 전달, 잘 찍히나? 각도 문제없어? ]

[ 대기, 드론 위치 변경 중... 네, 잘 보이네요. 말씀해 주십시오. ]

[ 여기에선 보기 드문 강철 재질로 된 직사각형 박스일세. 크기로 봐서는 내부에 보관용 캐니스터가 있을 법 하구만. 잠금장치는 별거 없어. 일반 자물쇠 형태이고. 아, 여기서 보니 한번 닫히면 밀폐되는 모양새인데? 어디에도 디지털의 냄새는 안 나는구먼. 러시아 제도 아니고. ]

[ 그린팀, 아이린입니다. 현재까지 그러한 박스 형태의 HVT는 그것까지 포함해 총 6개가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스내치에 성공한 건 이번 건이 처음이네요. ]

[ 즉, 다시 말하면 자료가 없다? ]

[ 그런 셈입니다. EOD 팀에게 맡기고 주변 확보만 부탁드리고 싶네요. ]

[ 아니지, 어차피 파괴할 물건 아닌가? 이걸 지금 여기서 열 거 아니라면 가져가서 뭘 하려고? ]

[ 그건 이제 위에서 판단할 꺼리죠. 아저씨, 이제 충분합니다. 여기까지 하죠. ]


루 중위의 애처로운 목소리를 끝으로 통신망은 잠잠해졌다. 닥터 왓슨은 말없이 상자 앞에 무릎을 꿇은 상태로 생각에 잠긴 듯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노딩턴 대위는 그들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 중상자를 실어 나를 AMF 팀의 이동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눈과 손으로는 터미널을 만지고 있었지만 온 신경은 화면 속의 닥터 왓슨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 제길, 통신 채널 요청, 그린팀이 센트럴에게. ]

[ 센트럴, 확인. 그린팀에게 응답함. ]

[ 젊은 친구들이랑 일하려니 한편으로는 편한데 한편으로는 힘들군요. 자, 냉정히 까고 말해봅시다. 이게 뭐요? ]

[ JERF 소속 얀 안센트 대령입니다. 그린팀이 지금 수색 중인 그 물건은 최근 나토로부터 계속 발견 보고가 들어온 WMD 후보 녀석입니다. 5개를 발견하였으나 모두 놓치고 이제야 카메라로 그걸 들여다보고 있는 셈이죠. ]

[ 아, 그 말은 곧... 이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겠군요? 그렇습니까? ]

[ 네, 정황상 유추하고 있을 뿐 정체는 모르고 있기에 발견 즉시 파괴하려고 하였으나 아이린팀이 고집을 부리고 추적을 계속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코앞에 박스를 앞에 두고 있으니 차마 파괴하라는 명령은 내릴 수가 없겠군요. 다른 채널에서도 열성적으로 매달리고 있고... 그린팀, 열 수 있겠습니까? ]

[ 열어 보고야 싶은데 폭파 도구 외엔 쓸만한 게 없군요. 민감할 것 같아 자물쇠는 못 날리겠습니다. ]

[ 좋습니다. 그렇다면 확보팀을 보내겠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이린 팀을 통해 전달하겠습니다. 센트럴 아웃. ]

[ 아이린, 들었나? 우린 이제 여기서 버티기 작전에 돌입한다. 확보팀 올 때까지 버틸 테니 잘 유도해줘. ]

[ 알겠습니다. 확보팀, MET-D 팀의 도착 예정 시간은 15분. 아이린 아웃. ]


18명이 15분간 적성 지역에서 2개 국의 국경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왔던 WMD 후보 목표물을 방어한다... 사막 한복판이니까 별로 어렵지 않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사막 한복판에 고립된 상태로 놔둔다는 게 문제였다. 그린팀과 목표물 간의 추격전을 만들어 내느라 그린팀의 동선이 통과하는 구역들을 싹 비워냈더니 이제는 지원이 문제가 되었다. 작전의 최후 단계에 이른 지금 그린팀은 경무장한 자신의 장비들로 어떤 상황에서도 15분을 버텨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었다. 언제나 마지막 마무리가 쉬운 작전이란 건 없었다. 게다가 그린팀은 탄약마저 보유량에서 60% 가까이 이미 쏟아부은 상황이었으니 전투가 지속되면 힘들어질 게 눈에 선했다.


[ 아이린이 그린팀에게. CAT 팀이 탄약은 좀 보충해 주었습니까? ]

[ 미군도 아닌 놈들이 그런 융통성이 있기야 하겠나... 자기들 꺼라도 챙겨 왔는지 모르겠군. ]

[ 아이린 1-2가 그린팀에게. CAT 팀은 타격 부대입니다. 탄약은 분명히 있을 겁니다. ]

[ 알아, 근데 달라고 하기가 힘들군. ]

[ 곧 AMF 팀이 도착합니다. 그들에게라도 달라고 하세요. ]

[ 알았다, 너무 신경질 좀 부리지 마. 나라고 안 그러고 싶겠나. 지휘관 양반. ]


한담을 건네며 감정을 이완시키려던 노딩턴 대위의 눈에 이상한 점이 포착되었다. 보고 있는 것이 맞다면... 그린팀의 지점으로 4개의 이라크 군 트럭이 접근 중이었다.


그리고 기묘하게도 그들은 OPCOM-A의 AO 경계선을 그냥 무시하고 곧장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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