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lack Compan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창환 Oct 02. 2019

17. 이라크, 그린존 (12)

[ AMF 팀, 그린팀과 5분 뒤에 합류할 예정. ]

[ 확인, 그린팀과 적과의 거리는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져 있는가? ]

[ 그린팀과 합류 후 최대한 남하한다. 적군은 장갑화된 고속 기동 차량에 탑승하였으며 시속 65km로 남하 중이다. ]

[ 무장 상태는...? ]

[ K64, 이란 무리들의 무장 상태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

[ 확인, 경무장된 병력으로써 RPG-7, RPK, 개인 화기로 무장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건 방어 수준입니다. 방탄복을 착용하였을 것으로 추정 중. ]

'망할, 이 땅에서 제대로 돌아가는 건 하나도 없구먼...'


진다. 따라 잡히게 되고 전투에 돌입하면 그린팀은 수적인 면, 화력적인 면에서 모두 열세이기 때문에 결코 이길 수 없다. 노딩턴 대위는 지나쳐온 상황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긴장하였다. AMF 팀과 반드시 합류시키고 공중과 지상에서 최대한 화력을 집중시켜야 한다. 그리고 적들이 주춤할 때 재빨리 이탈한다. 도망치면서 동시에 떨궈내야 했다. 전술 상황에서 재빠른 정보 전달이 이행되지 않으면 그린팀은 위험에 처한다.


지상 관제 담당인 루 중위의 도움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고 노딩턴 대위는 슬쩍 곁눈 짓으로 루 중위를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루 중위는 도망치는 그린팀과 AMF 팀의 접선 지점과 공격 포인트를 SATCOM과 정신없이 조율 중이었고 혼란에 빠진 것 같지는 않았다.


[ 아이린 1-2, 그린팀에게 전달. 남쪽으로 10km 지점에서 AMF 팀과 조우 예정. ]

[ 확인, 아이린. 적군은 어디에 있나...? 제길, 먼지구름이 보이는 구만. 알겠네. ]

[ 아이린 1-1, AMF 팀에게 전달. 북쪽 10km 지점에서 그린팀과 조우 예정. 바로 적군이 추격 중이니 교전 대비 바람. ]


승부의 시간. AMF 팀과 조우한 그린팀은 그대로 지나쳐서 남진을 계속하고 AMF팀은 미니건으로 선두 차량과 적군의 반격을 무력화한다. 적군이 선제공격을 통해 고착되면 AMF팀은 그린팀을 후위에서 엄호하면서 기지로 귀환, 작전은 종료된다. 센트럴은 아이린의 작전 계획을 승인하고 이동 시간과 거리를 조합하여 타임 라인을 수정하였다. 수정된 타임 라인엔 작전 종료 시간이 18시로 희망차게 계획되어 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귀환한 그린팀과 맥주 한 잔을 시원하게 나눌 수 있겠지만...


[ AMF 팀, 대기 중. ]

[ 확인, AMF 팀. 3분 뒤 그린팀 육안으로 포착 가능. ]


그린팀 뒤에서 달려오고 있는 적군들은 그새 많이 따라잡아 그린팀이 속도를 조금이라도 줄이게 되면 곧장 총탄을 퍼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린팀에게 속도를 더 내라고 하고 싶었지만 루 중위의 스크린에 출력된 장갑차 센서 지표들을 보니 점프 한 번에 곧장 차량이 퍼져 버릴지도 모를 정도로 아슬아슬한 수준으로 달리고 있었다.


'버티기는커녕 도망가기도 힘겹구먼.'


속도가 필요한 시점에서 속도를 낼 수 없고 화력이 필요한 시점에서 공격을 유지할 수 없다. 도망가는 거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태라 애간장이 바짝 타들어 갔다. 그린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지상 폭격 지원이 절실했지만 미군들도 아니고 나토군도 아닌 유럽 원정군은 제때에 원하는 공격 지원을 받아 내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듈화 편제는 나토와의 공조로 비교적 잘 이루어졌지만 미군과는 달리 지휘 통제 부서가 먼저 전환되고 전투 담당 부서는 아직 전환이 더디었다. 유럽 원정군의 고질적인 문제가 이렇게 작전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심지어 그린팀은 유럽 원정군 소속도 아닌 민간인들이었다. 군에 오래 몸 담은 장성들이 항상 혀를 차듯 말하는 '전쟁할 준비가 전혀 안된 상태로 몸뚱이만 날아온' 상황인 것이다.


[ AMF 팀에서 전송. 조우, 조우, 조우. 그린팀 확인. ]

[ 아이린 1-2, 확인! 그대로 지나쳐 후위에서 추격 중인 적군에게 직접 공격 개시! 전달! ]

[ AMF 팀, 확인. 공격 후 반전. ]

[ 아이린 1-1에서 전체 전달, 전투 상황에 돌입. 전투 상황에 돌입. ]


노딩턴 대위는 피가 타는 심정으로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1초, 1 프레임도 놓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린팀과 이란 적군 그룹과의 거리는 불과 250미터까지 좁혀져 있는 상태였다. 정규 훈련을 받은 병력답게 적군은 각 차량을 라인 대형으로 펼쳐 한 점에 공격을 집중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닥터 왓슨의 새햐얗게 질린 표정이 눈에 안 보여도 선했다. 전투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위기 상황이 올 때를 안다. 대부분은 그 기미를 파악하고 회피하거나 분쇄해 버리는데 때로는 그 상황을 피하지 못하는 경우가 어쩔 수 없이 있었다. 그게 지금이었다. 4대 1... 이건 전술 수준에서 생각해 볼 것도 없이 패배가 명확한 상황이었다.


[ 아이린 1-2, 그린팀에게 전달! ]

[ 뭐? 뭘? 이 상황에서 뭘? ]

[ 최대한 밟으세요! ]


통신문을 가장한 평서문을 목청껏 외치면서 루 중위는 나름대로 그린팀을 독려했다. 지켜봐야만 하는 루 중위의 절박함을 알 것 같았다. 내용은 엉망이지만 그게 지금 아이린 팀의 심정을 대변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린팀은 살고 적군은 분쇄한다. 그린팀의 차량이 하늘에서 날아오는 AMF 팀과 겹쳐졌다. AMF 팀은 적군의 공격을 회피하기 위해 우측으로 선회하며 적군 대형의 남동쪽으로 향했다. 지상과는 달리 이제 적들은 점으로 이동하는 차량 대신 선으로 이동하는 헬기를 상대해야 했다. 그토록 필요하던 기동성을 갖춘 대항군을 만난 셈이다.


[ RPG! RPG! ]


역시나 정규 병력답게 적군은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AMF 팀도 노련하게 고도를 낮추면서 로켓을 회피했고 동시에 공격을 가했다. 왼쪽 측면에서 미니건이 불을 뿜었고 가장 오른편에 있던 적군 차량이 폭발과 함께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하인드는 아니지만 블랙 호크는 하인드가 갖지 못한 기동성이 있었다. 그리고 AMF 팀은 그 장점을 잘 살릴 줄 알았다. 공격을 피해 활강하던 속도 그대로 적군들의 후위 쪽으로 이동하고 다시 공격의 기회를 잡으려고 하는 순간 적군 차량 대열이 흩어졌다. 벌떼들이 자기 집에서 뛰쳐나오듯 흩어져 버리니 AMF 팀은 순간적으로 표적을 놓쳤고 그 귀중한 시간은 적군에게 반격의 기회를 제공했다. AMF 팀은 교전 방식대로 가장 가까운 적군에게 공격을 가했고 하나의 트럭은 불덩이로 만들었지만 나머지 2대에서 로켓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 AMF 팀, 회피 기동! 회피 기동! ]


노딩턴 대위는 피가 거꾸로 솟는 심정으로 외쳤다. 근거리에서 발사된 로켓은 그대로 블랙 호크의 꼬리 부분에 명중했고 고도를 낮추면서 조준을 회피하려던 AMF 팀은 그대로 균형을 잃고 공중에서 뱅뱅 돌기 시작했다. AMF 팀의 파일럿들은 기체 폭파를 막고 어떻게든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메인 로터에 의한 운동력은 좀처럼 감소되지 않았다. 노딩턴 대위는 정신없이 대기 중이던 CSAR 팀에 구조 요청을 전송하고 관제를 SATCOM으로 넘겼다. 로켓포로 무장한 적군들이 곧장 그린팀에게 달려들었지만 이제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루 중위는 ATCS에 떠있는 모든 유닛들에게 긴급 지원을 애원에 가깝도록 외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르러 모든 것이 꼬이려고 하고 있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 그린팀에서 전송. ]


닥터 왓슨의 착 내려앉은 목소리가 전체 유닛 전달 채널로 흘러나왔다. 노딩턴 대위와 루 중위가 지금까지 한 번도 듣지 못한 목소리였다.


[ 현 위치에서 응전한다. 이상. ]


차가 멈추고 박사를 제외한 그린팀 전원이 내렸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임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노딩턴 대위는 재빨리 드론의 촬영 각도를 조절해 닥터 왓슨의 표정을 살폈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저 멀리서 접근하고 있는 적군들의 방향을 살펴보는 닥터 왓슨은 잠시 땅을 바라보던걸 멈추고 하늘에 떠있는 드론을 올려다보았다. 운용 고도를 1km에 설정해 두었기 때문에 본체는 보일 리 없었지만 닥터 왓슨은 신기하게도 바로 드론이 떠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 그린팀이 아이린에게. 걱정 마, 죽자고 이러는 건 아냐. 높은 지형으로 이동하겠다. ]

[ ... 확인! 아이린 1-2, 그린팀에게! 북서쪽 방향에 언덕이 있습니다! ]

[ 경사면에서 근접 공격하겠네. 화력을 때려 부을 테니 적군 위치들 잘 찍어줘. ]

[ 확인, 확인! ]


근접 거리에서 공격해 차량을 정지, 하차하는 적군에 대해 아이린의 지상 관제를 동원해 접근을 차단하고 지형 차이를 이용해 고착시키고 섬멸한다. 노딩턴 대위는 재빨리 화력 차이를 비교해 보았다. 경무장으로 출동한 그린팀은 작전 막바지에 이르렀기에 남아있는 무장이 비참할 지경으로 빈약했다. 쏟아붓는다고 했지만 격렬한 전투를 20분 이상 유지할 수는 없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작전 초기에 AT-4를 쏟아부은 것도 이제 와서 작전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나마 유탄 발사기가 남아 있는 게 다행이었다. 최상의 전술... 을 입안하기가 무척 힘든 상황이었다. 사실 이제 나설 구석이 없게 된 상황이기도 했다. 정말로, 정말로 그린팀의 재량에 맡겨야 하는, 그리고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상황이 또다시 찾아왔지만 그 숱한 빌어먹을 상황과 똑같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노딩턴 대위는 입술이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답답했다. 너무나 답답했다.


[ 접근, 250m. 적들은 서서히 접근 중. 보이십니까? ]

[ 확인. 2대가 마치 주차하듯이 다가오는 걸 확인. ]

[ 아이린입니다. 지원 유닛을 요청 중이지만... ]

[ 됐어. 알아. 기분 깨지 말라고. 여기 친구들 다 같이 듣고 있으니까. ]

[ ... 확인. ]


적들은 마치 승리를 확신하듯 차에서 내려 일렬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공격 사정거리에 있었지만 이미 그런 건 신경도 안 쓰는 모양이었다. 그 특유의 거만한 느릿한 발걸음으로 걷는 것을 보며 JDAM을 꽂아 넣어 화면 상에서 지워 버리고 싶었지만 은행 측을 경유하더라도 최소 20분 이상은 걸렸다. 흑해 상에 주둔 중인 미군 소속 항모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이고 터키 측에서의 나토 스크램블 편대는 항속거리에서조차 닿지 않았다. ATCS의 편제 유닛에 대한 정보를 아무리 갱신해도 숨겨진 부대 같은 건 없었다. 이 지상과 이 하늘 아래 정말 고독한 싸움이 시작될 판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16. 이라크, 그린존 (1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