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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CP-04, 3그룹 리더다. 솔리드 1 요청. ]
편대를 하나씩 보급 기지에 보내고 있던 로베르트 소령에게서 갑자기 1대1 통신 요청이 들어왔다. 루터 대위는 의외였지만 해야 될 얘기가 많이 쌓여 있는 건 마찬가지여서 지체하지 않고 채널망을 개설했다.
[ 네, 소령님. 루터 대위입니다. 말씀하십시오. ]
[ 상황이 너무 많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어서 정리해 보자고. 이게 대체 다 뭔가? 우린 정찰 미션 온 거지, 적진 침투하라는 게 아닐 텐데? ]
[ 네, 그건 분명하죠. 콜 중령님께 들은 그대로입니다. 이 작전, 지금 가는 비행 계획이 우연인지 실수인지 계획인지 상부도 방금 안 겁니다. 그러니 저렇게 펄쩍 뛰신 거죠. 저도 명령받고 지원 나온 거지 이 작전 입안한 게 아닙니다. 그 점은 분명히 하고 싶네요. ]
[ 그걸 의심하는 건 아니네... 자네가 자살하고 싶어 날 여기로 끌고 온 건 아닐 테니까. 누가 계획한 건지 대위도 아는 게 없나? ]
[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요즘 작전이 장성들의 대가리에서 나온 건지 AI의 머리에서 나온 건지 물어보시는 거라면... 그게 큰 의미가 있는 질문인지 저는 회의적입니다. 소령님도 브리핑 때 이미 겪고 계시잖습니까? 물어보면 답해주는 게 누구인지... ]
[ 젠장, 그건 알지만... 앞으로 문제없길 기대하는 나 자신이 싫군. 앞으로의 상황도 그렇지 않고. ]
[ 콜 중령님이 그나마 직접 들었고 좀 있으면 지원도 올 테니 일단 이 작전 끝내는 것만 생각하죠. 돌아갈 길이 멉니다. ]
로베르트 소령 또한 전투 외의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건 알고 있었다. 애초에 인간이 아닌 적과 전쟁을 하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오래되기도 했고 거기에 맞춰 대응을 하다 보니 인간의 전투 방식이 점점 기계처럼 되어가고 사고의 과정과 처리도 기계처럼 효율과 결과를 철저히 따라갔다. 전쟁을 치르기 위해 작전의 입안, 처리, 명령 과정에서의 조언, 상황 판단과 자료 분석 등에 기계, 컴퓨터와 AI로 대표되는 기계 집단이 깊숙이 참여한 건 이미 오래전의 이야기였다. 데이터와 신호, 패턴 등으로 이 전쟁이 분석되어 온 건 이 전쟁이 시작될 때부터 진행되었던 일이었다. 루터 대위가 군인이 되기 이전부터 인간은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고 지구에선 인간이 전쟁을 할 필요 없이 기계에 더 맡기고 빨리 결전 병기를 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현실은 적이 화성 방면 어디에서 출현할지 감도 못 잡고 있었다. VAX는 소모되어도 별 타격이 없지만 우린 인간이, 인간 자원이 계속 소모되고 있었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회수되지 못하는 각종 자원들에 대해서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지만 계산서를 손에 들고 전쟁 반대를 외치는 인간들이 있었다. 지구가 불바다가 된 지 겨우 30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우주에서 전쟁을 벌이고 지구로 휴가를 가면 이런 상황을 루터 대위도 직접 겪었다. 그 이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물며 뉴스로 하루종일 떠드는 걸 보는 지구인이야 옆에서 불난 것도 아닌데 마찬가지로 이질감을 느낄 거라고 생각했다. 답이 없는 전쟁이다. 루터 대위는 그렇게 생각했다.
[ 기장님, 통신 들어옵니다. 중령님입니다. 단문이네요. 2그룹 지원, 임무 속행. 이상. 다른 건 없습니다. ]
윗선에서도 이 문제는 안갯속에 있는 모양이었다. 최전선의 전투부대장도 답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루터 대위는 한숨을 쉬며 최신 상황을 콘솔에 반영하였다. 할 수 있는 건 이제 전진만 남은 상태다.
[ 로베르트 소령님, 2그룹이 온답니다. 콜 중령님도 거기까지인 거 같네요. 임무는 계속하랍니다. 다른 말씀은 없으시고요. ]
[ 이건 뭐... 불지옥에 나 먼저, 2그룹은 그다음이라고 하는 거 같은데. 젠장... ]
[ 보급은 거의 끝나갑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다릴까요, 아니면... ]
[ 2그룹도 마찬가지겠지. 여기서 일단 보급받으라고 해. 머리수 많아서 좋을 상황이 아니잖은가. ]
[ 그건 그렇죠. 위력 정찰도 아니니까요. ]
[ 빠르게 둘러보면서 통과하자고. 그다음 2그룹 보고 오라 그러고. 이게 이렇게 대단한 수를 써야 하는 상황인지 웃음이 나오는구먼. 아, 드론은 안 보내줬나? ]
[ 없습니다. 왜 그건 또 안 보내주셨지... ]
[ 나중에 가서 따지자고. 2 그룹하고 연결해. 가지. ]
결국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로베르트 소령 표현대로 정보가 부족한 인간들만 늘어나 어쩔 줄 모르고 발만 동동거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여기서 죽 치고 있을 이유야 없으니 이젠 정말 가야 했다. 당연하게도 드론을 보내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은 게 정말 의외였지만 이제 머리수까지 늘어난 상태에서 없는걸 계속 신경 쓰고 있을 수는 없었다. 루터 대위는 상황을 단문 형태로 2그룹 리더에게 전송하라고 부기장에게 명령하고 떠나려는 3그룹에 집중했다. 다시 게임이 시작됐다. 로베르트 소령은 편대를 1개의 선두, 3개의 후속팀으로 나눴다. 그냥 일반적인 편대 비행으로 갈 수도 있지만 소령은 적이 저 블랙아웃 지역에 있을 거라고 가정하고 미끼를 던진 셈이다. 1개 편대는 역할대로 정숙성은 버리고 ECM, 슈퍼 서치 모드를 모두 가동한 채 레이더에 커다란 항적을 그리며 적들을 유인한다. 적에게 기습을 당하느니 차라리 위치와 규모를 제대로 알 수 있도록 적에게 노출시키는 전술을 택한 셈인데 루터 대위는 출현할 VAX 놈들이 과연 얼마만큼일지 염려가 되긴 했다. 그렇다고 이미 전투를 치른 후 블랙아웃 지역으로 돌입하는 마당에 평온하게 지나치는 건 기대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확률로 따지면 높은 확률로 적들은 지원 병력을 보낼 것이다. VAX의 입장에서 3그룹은 이미 전투를 치렀고 위치와 규모가 노출되었으며 아군 진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적이었다. 너무 많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편대 내 브리핑이 끝나자 로베르트 소령 쪽에서 준비 완료를 뜻하는 그린 사인을 보냈고 루터 대위는 통신 채널에 작전 수행 사인을 내보냈다.
[ SATCOM, 작전 승인. 3그룹, 돌입하라. ]
[ 확인, 3그룹 진입. 알파, 선두로. ]
[ 알파 리더가 알파에게. 슈퍼 서치, ECM 온. 눈들 떠. VAX가 있다고 가정하라고. ]
[ 2그룹이 3그룹에게, 소령님. 지켜보다가 곧바로 가겠습니다. ]
[ 이봐, 나 죽으러 가는 거 아냐. 마지막처럼 얘기하지 말라고. ]
[ 그럴 리가요, 맥주 빚진 거 아직 못 받았는데 이대로 지구로 갈까 봐 그런 거죠. 2그룹 아웃. ]
[ 에잇, 뭔 헛소리를… 알파, 전진. 나머지는 알파를 포켓 인 거리로 두고 따라가라. ]
2그룹 리더 베넷 대위의 시답잖은 농담을 흘려들으며 3그룹은 전진을 시작했다. 루터 대위는 시야를 돌려 헬멧의 HUD로 진행 방향 쪽을 살폈다. 지시된 웨이 포인트 라인이 블랙아웃 지역 쪽으로 진행되며 점점 붉은색으로 변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하얀색이던 라인이 붉은색으로 변하면서 이 지역이 더 이상 아군이 통제하는 영역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실시간으로 받는 비행 데이터든 중추 컴퓨터에 저장된 데이터든 이제 레이더로 검출되는 건 모두 처음 갱신되는 정보들이었다. 지구에서라면 구름이든 안개든, 산맥이든 물리적으로 이용할 엄폐물들이 있겠지만 여긴 우주 한복판이다. 레이더 상의 검은 영역으로 한 발자국씩 이동할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게 느껴졌다. 상하좌우 검게 열려 있는 공간 어디에서든 VAX 가 날아들 수 있다고 가정하는 건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질감이 가득한,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루터 대위는 손에 땀이 배이는 것이 느껴졌다. 알파 편대가 앞서가며 레이더 파장을 반복해서 거대한 공간에 뿌려질 때마다 울리는 신호음 말고 루터 대위는 침묵을 계속 지켰다.
[ 너무 고요한데... ]
[ 그러게요, 너무 고요하네요... ]
혼잣말 같은 중얼거림에 뒤쪽에 앉아있던 부기장이 덜컥 대답을 했다. 막상 블랙아웃 지역에 긴장하며 뛰어들며 흥분 상태는 오를 때로 올랐는데 기분 나쁜 침묵이 이어지니 실을 팽팽하게 당기는 듯한 기분을 숨기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긴장할 필요가 있나 싶어 루터 대위는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부기장인 잭슨 소위에게 말을 걸었다.
[ 잭슨, 부기장께서는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
[ 향후 작전 전개를 예상하라면... 이 블랙아웃 지역에서 가장 깊숙이 들어갈 때까지 VAX 놈들은 지켜보겠죠. 이 근처에 있다면 말입니다. 기습을 하려고 해도 지원이 금방 오면 효과가 없을 테니까요. 그런 의미로 지금 조용한 건 그 전망에 따라 있을 법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
[ 그렇겠군. 그럼 예상되는 접촉 지점이...? ]
[ 여깁니다. 표시하겠습니다. ]
[ TACP-04 가 3그룹에게, 현 상황과 정보를 토대로 한 VAX 예상 접촉 지점을 표시했습니다. 확인. ]
[ 3그룹 확인... 가장 멀어지는 지점이로군. ]
[ 그렇습니다. 기다리고 있다면 거기서 기다릴 가능성이 제일 크죠. 지금 덮칠게 아니라면 거기가 전술적으로 제일 위험해 보입니다. ]
[ 알았다. 참고하지. 3그룹 아웃. ]
[ 좋아, 잭슨. 좋은 시각이다. 그럼 다음으로 더 어려운 문제. 적이 얼마나 튀어나올까? ]
[ 어... ]
[ 가정해 보자고. 우리 역할이잖아. 아무것도 모른 체 가는 것보다는 뭐라도 도움 될 예상이 필요하다. ]
[ 적의 규모는... 정말 짐작하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1개 편대에서 1개 군단으로 다 예상 가능하죠. 최근의 상황을 이어 생각해 본다면 적이 이 지역에, 이 시기에 갑자기 대규모로 나타날 이유는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선 전반에 걸쳐 계속 소규모의 전투가 이어지는 건 아직까지 VAX도 침공 루트를 못 잡아서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 아니면 단순히 병력 소모를 위해 보낸걸 수도 있지... ]
[ 그러기엔 소모 비율이 맞지 않습니다. 우리가 불리해야 소모전이 성립되지 지금은 1대1 도 아니라 오히려 저쪽이 더 많이 박살 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여기서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침공 군단이 대규모로 나타난다면... ]
[ 나타난다면? ]
[ ... 모르겠습니다. 똑같은 인간이라면 뭔가 더 알아보려고 하는 시도가 이어질 거 같은데 제 판단에 확신이 안 섭니다. ]
틀린 말은 아니다. 인간이라면 이란 가정이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집단이자 존재이니까. 잭슨 소위의 통찰도 순전히 데이터와 현 상황의 흐름을 토대로 한 가정에 지날 뿐 결국 인간이 할법한 결과가 보일 것인가에 도달하면 망설이게 된다. 그렇기에 전선이 여기 우주 저 멀리까지 왔어도 전쟁이 끝나지 않는 이유다. 끝을 볼 무언가가 없이 밀고 밀리는 공방전 끝에 여기까지 왔지만 인간이라서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변하는 것 없이 흐르기만 했기에... 흐르기만 했기에? 순간 루터 대위의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이 번뜩이며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