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 오리진스>
인간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서른 살 전후 무렵 나는 정신적 미아 상태였다. 제도 질서로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며 용감하게 혼자만의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몇 년 만에 길을 잃었다. 마음은 늘 이상과 현실,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의무감과 실존적 밥벌이라는 갈등으로 뒤엉켜 있었다. 어떤 일이든 하겠다는 열정은 타올랐지만 도전하는 일마다 너무 어리거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하는 게 현실이었다. 그 시절 내게 청춘이란 ‘어중간한 시절의 절망감’ 같은 의미였다. 그즈음 한 선배를 만났고 그는 나를 문화예술계로 인도했다. 거기서 나는 마침내 내 정체성을 찾았다.
그런데 바로 얼마 전 그 선배가 세상을 떠나셨다. 선배는 죽음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주변정리를 하셨기에 장례는 소박했다. 생전에 미리 장기기증 서약을 했었지만 시신기증까지 하고 가실 정도로 선배의 생사관은 남달랐다. 선배처럼 때론 아버지처럼 오랜 세월 깊은 교분을 쌓은 분이라 장례 후에도 나는 한동안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인간의 생사는 하나다. 인생은 동전 양면처럼 같은 비율로 삶과 죽음이 구성하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 살다가 때가 되면 죽는다는 것을 모두 잘 알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죽음이 두려운 건 소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내 존재는 사라지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두려움이다. 하지만 죽음이 반드시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불교의 ‘윤회’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러하다.
사실 죽음이란 생애를 다한 생물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어린 시절 보았던 <코스모스> 같은 우주 다큐멘터리는 이 사실을 친절히 설명해 준다. 사람의 몸은 밤하늘의 별과 같은 물질로 만들어져 있다. 나와 당신이 죽는다 해도 우리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들은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지구에 남는다. 옛말 틀린 것 없다. 사람은 흙에서 나 흙으로 돌아간다. 단지 우리의 영혼만이 육신을 떠날 뿐이다. 사람은 존재의 위기를 겪기 전에는 존재의 의미를 깊게 사유하지 못한다. 무상한 인생의 한 철을 보내고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릴 때야 생각한다.
“인간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다음 생에도 삶은 계속되는가?"
인간이 사유를 시작한 이래 가장 근원적 질문이다. 지구 상의 모든 철학과 인문학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모른다.
개인의 우주, 눈
설명하자면 끝없을 이 철학적 질문에 한 편의 영화가 짧고 감동적인 답변을 준다. '우리는 어디선가 다시 만난다’고.
바로 <아이 오리진스 I Origins>(2014)라는 영화다. 일반적인 할리우드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독특한 감성과 세계관으로 주목을 받았던 마이크 카일 감독의 두 번째 연출 작품이다.
이 지구 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눈 속에 각각의 고유한 홍채의 쌍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개인이 가진 우주다. 현대의 홍채학은 홍채만으로 개인의 건강을 진단한다. 또 홍채 패턴으로 개인 지문 패턴을 대신할 수 있다고 본다. 즉 홍채는 개인의 유전자 지도라는 것이다. <아이 오리진스>는 이 홍채가 가진 특별한 비밀을 이야기한다.
주인공 '이안'은 눈 속에 신의 창조 과정을 설명할 비밀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진화과정에서 어떤 유전인자가 눈을 만들어내는지 연구한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안면 몰수하고 상대방 눈 사진을 찍을 정도로 민폐 연구자다. 이런 이안이 어느 날 할로윈 파티에서 돌연변이 홍채를 지닌 복면 여인과 조우한다. 이제껏 없었던 강렬한 감정을 느꼈지만 얼굴도 이름도 모른 채 헤어진다. 찍어둔 그녀의 눈 사진을 구글 검색해서 그녀가 프랑스 출신 모델 '소피'임을 알아낸다. 곡절 끝에 다시 만나게 된 이안과 소피는 당연히(?) 사랑에 빠진다.
과학의 합리성을 믿는 이안과 자연의 신비성을 믿는 소피. 두 사람의 세계관은 합치하지 않지만 깊이 사랑하기에 두 사람을 결혼까지 한다. 결혼식 날 밤 불의의 사고로 소피가 죽자 이안은 깊은 절망에 빠진다. 고통 속에서도 세월은 흘러 10여 년 후 이안은 홍채학의 권위자가 되었다. 그는 연구 중 살아있는 사람 중에는 동일한 홍채가 없지만, 이미 죽은 사람의 홍채와 동일한 홍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안은 이 사실 앞에 인간의 삶이 윤회하는가에 대한 강한 의문을 품게 된다. 불현듯 이안은 소피의 홍채를 검색했고 인도 지방도시에 거주하는 소녀의 눈으로 등록된 홍채를 발견한다.
흥분한 이안은 동일한 홍채를 가진 인물들이 연관성이 있거나 혹은 이들이 전생을 기억하는지도 알고 싶었다. 인도로 달려가 소녀 '살로미나'를 테스트한다. 결과는 소녀가 소피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할 만한 과학적 증거로 불충분했다. 하지만 이안은 직감으로 느낀다. 증명할 수 없지만 소피의 강렬한 기억들에 반응하는 그 소녀가 바로 소피의 환생임을. 과학과 비과학적 직감이 교감하는 순간이다.
살면서 누구나 몇 번쯤은 논증보다 감각이 정확했던 경험을 가져봤을 것이다. 증명된 사실만 신뢰하는 과학이 우리 삶의 모든 것을 해명한다고 볼 수 없다. 살아있는 인간의 기억도 파편적인데 환생한 사람의 기억이 완벽하기를 바라는 건 무리 아닌가. 하지만 과학은 증거를 요구한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 개연성 없는 것들을 두려워하고, 좋아하는지, 왜 초면인데 아는 사람 같고 첫눈에 사랑에 빠져드는 것인지, 과학은 이런 현상들을 분명히 증명할 수 없다. 때론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부정하는 과학성보다 100% 알 순 없지만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는 감성이 인간의 공존을 위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우리가 삶의 불꽃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영화 <아이 오리진스>는 홍채 패턴으로 생명 윤회의 기원을 찾는 것 같지만, 사실 생명 너머 존재의 근원인 ‘영혼’이 눈 속에 숨어있음을 말한다. 사람들은 삶의 불꽃을 지피는 동안 중요한 것들을 잃거나 잊는다. 우리는 일상에서 조우하던 죽음이 어느 날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의미를 완벽히 깨달을 수 없다. 하지만 이별과 죽음이 영원한 소멸을 의미하지 않으며 단지 새 삶에 대한 준비라고 생각해보면 두려움이 조금은 덜어지지 않는가?
마이크 카일 감독은 만남, 이별과 재회라는 사건을 통해 눈의 윤회를 보여주지만 그는 사실 현재를 말하고 있다. 지금 현재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인지를.
이제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보라. 혹은 우리 곁을 떠난 이들, 혹은 우리가 버린 이들의 눈을 생각해보라. 영원한 끝이 아니기에 우리가 목격한 그들의 마지막 눈을 향해 진심으로 축복 혹은 용서를 빌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ᅠ쉽게 대답할 수 없는 메아리 같은 질문이다. 하지만 다시 만난다면 '진정 사랑했노라' 말할 수 있도록, 우리는 언젠가 이별할 이 작고 초라한 일상마저 뜨겁게 포옹해야 한다.
2018.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