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3화, 두 번의 암, 이유를 찾아서

by 승연하

소녀의 세계는 여섯 살 무렵,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어느 골목 끝 작은 기와집에서 시작되었다. 그곳은 외할머니의 집이었고, 소녀에게는 따뜻한 요람이었다. 그러나 그 평화는 어느 날 갑자기 외출에서 돌아온 엄마의 서두름에 깨어졌다.


엄마는 여행 가방을 꺼내 가족들의 옷가지들을 마구 쑤셔 넣으며 "어서 옷 갈아입어라." 소녀는 영문도 모른 채 엄마가 던져준 하얀 바탕에 잔잔한 빨간 점들이 박힌 원피스를 입었다.

“기차 시간 맞추려면 빨리 서둘러야 된다.”

머리 꼭대기에 있던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자취를 감출 때쯤에야 기차는 멈춰 섰다. 버스를 타고, 또다시 한참을 걸었다. 짐 가방을 든 엄마의 한 손은 다섯 살 남동생의 손을 단단히 쥐고 있었다. 엄마는 아주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이따금 고개를 돌려 소녀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과자와 라면, 반찬들을 파는 작은 가게 앞이었다. "계세요...?" 엄마의 조심스러운 부름에 얼굴이 검고 체격이 큰 아주머니가 국물 얼룩들이 묻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타났다. "아! 이제야 왔구먼."


가게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자 작은 마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중앙에는 큰 마루 뒤로 안방이 있었고, 거기를 중심으로 한쪽은 가게와 곧장 통하는 문이 있고, 그 맞은편은 누군가에게 세를 주기 위해 만든 부엌이 딸린 단칸방이 있었다.

엄마와 주인아주머니가 가계 안 쪽으로 들어간 사이, 소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게 생각나서 남동생을 쳐다보니 동생은 무엇을 했는지 얼굴이 꼬질꼬질했다. 소녀는 마당 한편 수돗가로 동생을 데려가 엄마가 제게 해주었듯, 동생의 얼굴을 씻겨주었다.


어스름한 저녁이 되자 아버지도 도착했다. 그날부로 소녀의 가족은 그 단칸방에서의 셋방살이를 시작했다.

다음 날, 어찌 된 일인지 어두컴컴했던 부엌은 하룻밤 사이에 환해졌다. 엄마가 밤새 무엇을 어떻게 닦아냈는지, 냄비들은 은빛으로 빛났고 행주와 걸레는 흰 눈처럼 깨끗했다. 풀을 먹여 빳빳해진 이불깃은 잘못 덮으면 얼굴을 베일 정도였고 방바닥은 하도 닦아내서 반들반들했다.

소녀의 엄마 손에는 늘 걸레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쉼 없이 무언가를 닦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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