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유부남이 뭐지
엄마의 여동생인 순자 이모네 가족도 소녀네 집 근처로 이사를 왔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소녀의 집보다 훨씬 더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가야 했다. 엄마는 늘 이모를 생각하면 한숨을 쉬었다.
"느그 이모 순자 말이다. 그놈의 남편을 내가 소개해 줏따 아이가.
그런데 느그 이모부가 그럴 줄 누가 알았나?.
사흘돌이 여편네를 두들겨 패고 살림살이를 다 뿌사삐고 불살라버린다 아이가.(부수고 태운다)
그게 완전 미친놈이지 정상이가?
그렇다고 이혼도 안 해주고, 생사람을 잡아도 유분수지…. 느그 이모 팔자가 와 그렇노
속상해 죽겠다 참말로!"
소녀의 이모는 키가 커서 별명이 꺽다리였다. 얼굴에는 까만 김이 붙은 것처럼 기미가 있었고, 이모부와 싸운 날은 오른쪽, 왼쪽 눈에 번갈아 가며 시퍼런 멍이 있었다. 소녀의 기억 속 이모는 늘 잠을 자고 있거나, 깨어날 때면 진통제인 사리돈을 삼키고 부스스한 머리에 퉁퉁 부어서 아픈 모습이었다.
그 날는 이모가 컨디션이 괜찮았는지 아침부터 소녀네로 들어왔다.
“언니야, 와 이래 춥노.”
“이게 누고? 이 시간에 안 자고 어짠 일이고? 어서 들어 오너라 춥다, 춥다.”
“뭐, 이런 날도 있어야재.”
엄마와 이모는 따뜻한 아랫목에 담요를 덮고 앉았다.
"순자야, 며칠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나?
우리 연희는 순한데 큰 거(소녀의 언니)는 누구를 닮았는지 고집이 황소고집이다.
어제 아레(그저께) 요강에 오줌이 많이 찼길래 경희한테 요강 좀 비우라고 했더니만
왜 하필 자기를 시키냐면서 주디(주둥이)가 열댓 발 티(튀어) 나와갔고 씩씩거리면서 비우러 가드만 어짜는줄 아나?
요강 안에 오줌을 다 안 비우고 남겨오는기라.
왜 다 안 비우노 물었더만은 뭐라는 줄 아나?"
"뭐라든데?"
“ '내 것만 버렸지.' 이란다.
이그 확 마 머리를 지박 을라다가(쥐어박는다) 참았다.
그거는 고집 한번 냈다 하면 내 속이 확 다 탄다."
" 킥킥킥, 나는 그래도 큰기(소녀의 언니) 낫더라.(좋다)
작은 거(소녀)는 여우다, 딱 불여우 같아서 나중에는 즈그 언니 잡아 묵을 것 같고
그래도 큰 거는 고집은 센데 어리숙하다 아이가."
”그건 니 말이 맞다. “
"근데 순자야, 이거 비밀이데이... 이리 가까이 와 봐라.”
"뭔데, 뭔데??"
그때 소녀는 반쯤 닫힌 미닫이문 뒤에 엎드려 종이 인형에게 입힐 옷을 그리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색연필을 쥔 손은 화려한 드레스의 밑단을 그려 나갔지만, 소녀의 신경은 문틈 사이로 들려오는 어른들의 소곤거림에 쏠려 있었다.
"우리 집주인 딸 광자 있제,
그기 유부남하고 연애한단다. 주인아줌마가 속이 상해 죽을라 카드라
이번에 그 유부남이 광자한테 피아노 사 준단다. 돈이 많은 남잔갑드라...."
”엄마야, 맞나? 아이고 남사시럽꾸로.“(남이 알면 창피하겠다)
얼마 후 정말로 주인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의 큰 피아노가 들어왔다.
소녀는 피아노를 실제로 처음 보면서 학교 교실에 있는 풍금이랑 다르다고 생각했다.
"광자야, 우리 연희하고 경희도 피아노 좀 가르쳐 줄래?"
소녀의 엄마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