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생일이 없다.
다섯 식구가 사는 소녀의 단칸방.
어른들은 그곳을 ‘하꼬방’이라 불렀다. 그 방 한가운데에는 구획을 나누듯 반만 닫히는 낡은 미닫이문이 세워져 있었고 안쪽 방 끝에는 작은 문이 하나 있었다.
평소엔 벽처럼 굳게 닫혀 존재를 잊고 있다가 한여름이 되면 비로소 제 구실을 했다.
그 문을 활짝 열어젖히면 기다렸다는 듯 골목의 서늘한 바람이 방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럴 때면 선풍기 날개가 내는 기계적인 바람 따위는 전혀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문은 시원한 바람만 들여보내는 법이 없었다. 바람의 꼬리에는 늘 이웃들의 적나라한 일상과 원치 않는 비밀들을 함께 매달고 들어왔다.
옆집 부부가 고성을 지르며 다투는 소리, 노인의 깊은 코골이, 심지어는 누군가의 방귀 소리까지.
그렇게 하꼬방에 사는 사람들은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사생활을 강제로 공유해야 했다.
입춘이 지났음에도 2월의 오후는 여전히 칼바람이 문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하지만 두툼한 담요가 깔려 있는 아랫목만큼은 노곤한 온기가 가득했다. 그 따뜻한 이불속에서 어머니와 이모는 나란히 누워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언니 니 기억나나? 우리 민이 애기 때 살았던 그 산복도로 집 말이다.”
“알지. 흙으로 대충 쌓아가 언제 무너질지 몰랐던 그 집 아이가.”
이모는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옛이야기를 꺼냈다.
“하루는 주인집 아저씨가 나를 부르는데, 한쪽 눈을 자꾸 찡긋거리는 기라. 속으로 ‘이 아저씨가 와 이라노’ 싶었제. 근데 그걸 김 서방이 본 거라. 그래가 난리가 안 났나.”
이모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놈이 나한테 뭔 신호를 보냈는지 사실대로 대라꼬…. 내가 아무리 아니라 해도 눈이 뒤집히니까 안 들리는 거라.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아저씨가 눈꺼풀이 고장 나서 저절로 깜박거리는 사람이었대 안 카나. 그날 비도 추적추적 내리는데, 사실대로 말하라꼬 먼지 나도록 때리뿌수는데 참말로….”
“쯧쯧쯧, 미쳤제 참말로.”
엄마는 이모 대신 더 분해하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셨다.
"그나저나 순자야, 오늘이 연희 생일이데이. 근데 내 생일이 내일모레 아이 가. 어른 생일 앞에 애 생일이 있으면 안 챙기는 법인기라.
그래서 연희는 생일이 없다 아이가."
여덟 살 아이는 '생일' 이라는 단어를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런데 웬지 미닫이 문 뒤에 자신이 있다는 걸 들키기라도 하면 안 될 것 같아, 숨을 죽였다.
그리고 이유 모를 억울함과 섭섭함이 올라 오는 것을 꾹 눌러 삼켰다.
여자는 '그 여자' 를 기록하며 어느 지점에서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온다.
'어릴 때부터 할 말을, 억울함을 눌러서 삼키는 것'이 습관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