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살아도 된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깨운 뒤 삼십 분 정도 좌선에 든다. 그다음 부엌으로 가 레몬 하나를 짠다. 즙의 양은 늘 작은 소주잔에 딱 한 잔이다. 뿌옇지만 노란빛만으로도 침샘이 자극된다. 나는 그것을 물에 희석하지 않고 원액 그대로 마신다.
레몬즙을 맛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혀끝을 찌르는 산미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지고, 목을 타고 넘어가는 감각은 매번 약간의 각오를 요구한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해도 그렇다.
그럼에도 이 습관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맛 때문만이 아니다. 입술에 닿는 소주잔의 감촉 때문이다. 가볍고 얇은 잔이 입술에 밀착되는 순간의 느낌이 좋다. 참고로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가볍고 얇다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나는 전반적으로 그런 사람이다. 잡생각으로 무거운 머리와 불필요한 지방이 두툼하게 붙어 있는 복부만 빼고 선천적으로 타고난 뼈마디와 모발, 피부와 혈관이 가늘다. 겉보기에 나는 늘 가벼운 편이다. 성격도 그렇다.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이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라는 게 참 묘하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 늘 더 근사하고 비싸 보였다.
그래서 한동안 내가 아닌 것들에 마음을 두었다. 삶과 죽음부터 마땅히 근엄하다고 생각했고, 고독과 절망, 혼돈과 모순 같은 단어들이 철학적이고 더 그럴듯해 보였다. 예술은 그런 어둠 속에서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일에는 인과와 명분이 있어야 했다. ‘‘그냥’이라는 말은 쉽고 무책임해 보였다. 밝고 가벼운 것은 경박함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달라졌다. 찬장을 열면 손이 가는 것은 얇고 가벼운 찻잔들이다. 무겁고 비싼 냄비와 프라이팬들은 싱크대 안쪽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손목이 약해진 탓도 있겠지만, 무엇이 옳은지를 끝까지 증명하려 들 기력이 사라진 탓이 더 크다. 해마다 빠져나가는 기운 앞에서 진리와 신념은 점점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세상이 복잡한 인연과 필연으로 얽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여전히 하고 있다. 다만 이제는 굳이 모든 일에 코드를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며 스스로를 이야기 속에 가두고 싶지 않다.
이제 양어깨를 짓누르던 명분과 엄숙함을 내려놓는다. 단어만으로도 무거웠던 ‘존재’라는 짐도 함께 내려놓는다. 뜻하지 않았지만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그냥 살아간다.
무계획이어도 괜찮고, 논리적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아침마다 레몬즙을 마시는 소주잔처럼,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내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