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함박스테이크
엄마가 늦게 들어왔던 그날 이후, 집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갔다.
노랗고 빨간 단풍이 바람에 떠밀려 이리저리 흩어져 길바닥은 낙엽으로 덮여 카펫처럼 보였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니, 엄마는 소녀와 남동생에게 새 옷을 갈아입히고는 시내로 향했다. 보통 아버지의 월급날에나 통닭이나 삼계탕을 먹으러 시내를 나가곤 했는데, 택시까지 타고 대체 어디를 가는 건지 궁금했다.
택시에서 내린 엄마는 남동생의 손을 잡고 앞장섰고, 소녀는 그 뒤를 쫓았다.
발길이 멈춘 곳은 골목 안 익숙한 통닭집이 아니라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입구였다.
울긋불긋한 벽면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니 커다란 유리문이 나타났다. 안쪽은 영업을 하지 않는 것처럼 어두컴컴했다. 하지만 엄마는 이곳이 처음이 아니라는 듯 망설임 없이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사모님, 오셨어요?"
밖에서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흰 셔츠에 검은 조끼를 입은 젊은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실내조명은 꺼져 있었지만, 거울 같은 유리조각들이 박힌 천장과 벽면의 장식들이 미세한 빛을 머금어 묘한 광택을 내고 있었다. 안쪽 무대 위에는 조명과 연주자가 없이 악기들만 서 있었다.
엄마는 익숙한 듯 남자에게 눈인사를 건넸고, 그는 우리를 무대 바로 앞 테이블로 안내했다. 너무나 낯선 분위기에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얀 천이 덮인 둥근 테이블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고, 그 곁엔 폭신한 빨간 의자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테이블마다 놓인 재떨이와 작은 스탠드들은 아직 불을 밝히지 않은 채 침묵하고 있었다.
"엄마, 여기 어디야?"
"식당이지, 어디긴."
잠시 후, 검은 조끼의 남자가 하얀 접시를 들고 왔다. 엄마가 크림수프라고 일러주었다. 함께 나온 동그란 빵 곁에는 처음 보는 노란 버터가 놓여 있었다.
수프와 빵이 채 줄어들기도 전에 더 큰 접시가 놓였다. 그것이 '함박스테이크'라는 것이었다.
엄마는 생소한 나이프와 포크의 사용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소녀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는 정작 본인은 한 입도 대지 않은 채, 고기를 잘게 썰어 남동생의 입에 넣어주기 바빴다.
"맛있제? 이 집 함박스테이크가 아주 유명하다. 어서 먹어라."
소녀는 입 안의 고기를 우물거리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날 하얀 천이 덮인 테이블 위에서 소녀가 아는 맛이라고는 빵과 함께 나온 달콤한 딸기잼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