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행복

마음을 보는 이유

by 승연하
몇 년전 스님과 찻자리

괴로움의 원인은 다양하다.

전쟁과 가난, 복잡한 인간관계와 질병, 때로는 덥거나 추운 날씨까지.

우리는 외부 대상과 접촉하고 관계하면서, 그에 따라 일어나는 마음의 상태에 의해 행복과 불행을 경험한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느끼는 고통의 무게는 다르다.

마음의 작용은 단순히 대상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경험과 기억, 유전자와 호르몬 같은 조건들에 의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대상을 통제함으로써 행복해지려 한다.

보기 싫은 사람을 멀리하고, 통증은 없애려 하며, 원하는 것은 더 많이 가지려 애쓴다.

그러나 대상은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없고, 설사 가능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조건이 다하면 결국 사라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을 마주하는 나의 ‘마음’이다.

괴로운 마음을 변화시키려면 먼저 마음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마음을 본다는 것은 나무를 나무로 아는 것이나, 더우면 덥다고 아는 것과는 다르다.

대상과 접촉하는 순간, 그때 일어나는 내 마음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그때 마음의 바탕이 집착인지, 욕심인지, 혹은 화인지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괴로움의 원인임을 알면 멈출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선하고 유익한 마음이라면 더욱 키워 나가야 한다.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매 순간 알아차리고 마음을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마음은 형체도 없고 잡을 수도 없다.

변하지 않는 실체로서의 ‘나’는 없지만(무아),

찰나에 일어났다 사라지는 마음의 작용은 분명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공(空)의 이치다.

실체는 없지만, 괴롭거나 기쁘거나 하는 작용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이다.

마음 관찰에서는 무엇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 화가 일어날 때 우리는 그것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그 감정이 내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화가 곧 ‘나’인 것처럼 여기게 되고,

심지어 화를 내는 자신에게 다시 화를 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를 스스로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한다.

우리는 대상을 보고 분별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에는 서툴다.

조금만 방심해도 번뇌는 순식간에 스며들어 나의 의식을 압도한다.


빨리어로 ‘사띠’는 바른기억으로 알아차림 하는 것이다.

마음 관찰에서 사띠는 중요한 첫걸음이다.

조건이 만나서 생겼다가 사라지는 마음, 하지만 그 순간 일어나는 마음상태를 바로 보기 위해

우리는 매 순간 깨어 있는 알아차림(사띠)을 훈련해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괴로움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번뇌는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다.

몸의 병을 알아야 치료할 수 있듯, 내 마음속에 어떤 번뇌가 있는지 분명히 인식할 때 비로소 치유는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번뇌는 지혜로 나아가게 하는 하나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수행이 깊어져 탐진치가 소멸되어 마음이 고요해지면,

그 평안함마저 ‘내 것’이라 여기며 집착하지 않고

그 또한 하나의 상태로 알아차릴 뿐이다.


선한 마음에도 집착하며 머물지 않고,

괴로운 마음에도 휘둘리지 않으며,

일어나는 모든 상태에 매이지 않고 온전히 경험할 줄 아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변하지 않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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