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20년 만에 다시 찾아온 불청객

by 승연하

그 여자는 자기가 다니던 병원의 검사 결과물을 분당 서울대 병원으로 가져갔지만, 모든 검사는 새로 시작 해야 했다. 혈액 검사부터 X-레이, 초음파, CT, MRI, 그리고 뼈 스캔까지. 왠지 잘 짜인 대본이 있는 드라마처럼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결과를 보러 가는 날. 그녀는 여느 날처럼 새벽 수련을 했고, 도반들과 스타벅스에서 모닝커피를 마셨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문턱이었지만 공기는 여전히 한여름처럼 뜨거웠다.


유방암 병동 앞은 환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간호사가 상의 속옷까지 탈의하고 가운으로 갈아입으라 일렀다. 세탁을 수없이 거듭해 낡고 해진 병원 가운. 그녀는 그 가운을 걸친 채 환자와 보호자들 사이에서 빈 의자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항암의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빠져 모자를 눌러쓴 이부터, 림프부종으로 코끼리 다리만큼 부어버린 팔을 가진 이, 그리고 자꾸만 눈길이 가던 임신한 여성…. 누군가는 두 손을 맞잡고 기도했고, 누군가는 호명이 늦다며 항의했다. 그리고 그녀처럼, 선고를 기다리는 이들도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간호사가 그녀의 이름을 호명했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의사가 오면 바로 볼 수 있게 가운 끈을 풀고 침대에 누우라 했다. 의사는 세 개의 진료실을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옆 방에서 "축하합니다, 암이 아니네요"라는 소리가 벽을 넘어왔다. 그녀는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이 너무 부러웠다.


이제 그녀 차례였다. 의사는 가슴을 진찰하고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했다.

결과는 삼중음성 유방암.

크기는 작지만 20년 전의 전과가 있어 '재발'이라 했다. 재발은 크기와 상관없이 전절제를 해야 하며 치료 기간도 길다. 그녀가 20년이나 지났는데 어째서 재발이냐 묻자, 오후의 햇살 아래 충혈된 의사의 눈이 그녀를 향했다.

"이렇게 긴 시간이 흐른 뒤의 발병은 재발인지 아닌지 의견이 분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종양 일부가 흉추 뼈에 붙어 있다는 점이었다. 항암으로 크기를 줄여야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의사는 곧장 항암 내과로 그녀를 연결했다.


항암 내과 의사는 갓 결혼한 새댁처럼 앳된 여자였다. 그녀의 약지에서 반짝이는 반지와 초롱초롱한 눈빛, 엷은 미소. 그녀는 이 아수라장 속에서도 사람을 관찰하는 고약한 버릇이 튀어나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의사는 항암 8차를 예고했다. 그 뒤로 하는 의사의 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죽어도 하기 싫은 항암을 여덟 번이나 해야 한다는 사실만 계속 메아리쳤다.


'인도는? 비행기표는? 모두 취소해야 하나?'

이런,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