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부러움에 관하여
‘부럽지가 않어’
장기하가 부른 이 노래는 아마도 2022년을 가장 강타한 노래 중 한 곡이 아닐까 싶다.
“야 /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 난 괜찮어 /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가사에서는 계속 부럽지가 않다고 말한다.
처음엔 장기하답게 너무 센세이션 하고 웃겨서 재미로 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가사에 의구심을 품게 됐다. ‘장기하는 진짜 하나도 부러운 게 없을까...? 부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인가...?’ 그 의구심은 장기하의 콘서트 ‘공중부양 앵콜 콘서트’에서 해결됐다. 사실 본인도 부러움을 너무 많이 느끼기 때문에 이런 노래를 만든 거라고. 장기하의 굿즈 노트 가장 앞 장에도 이렇게 적혀있다. ‘전혀 부럽지가 않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죠. 그렇잖아요. 제가 왜 이런 노래를 부르겠어요. 그게 다 부러워서 그러는 거예요. 아 괜히 그러는 게 아니라 부러워서 그러는 거라니까요.’
부러움을 느끼는 장기하의 팬인 나 또한 부러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어쨌거나 장기하는 입 밖으로 부럽지가 않다고 거짓말이라도 하고 다니지만 나는 사실 부럽다는 말을 입 밖으로 잘 내뱉지 않는 사람이다.
수없이 많은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들 중 내가 몇 년째 부럽다고 하는 한 인물이 있다.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그 인물은 대학교를 편입하고 만난 한 동기이자 언니이다. 그 언니를 편의상 ‘아지랑이’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사실 별명이 있는데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 좀 민망해 할 수 있으니 이렇게 부르도록 하겠다.) 아지랑이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어른들에게 너스레를 잘 떨고, 대화 주제도 다양하게 많으며, 글도 잘 쓰고, 이야기도 재미있게 하고, 가장 아는 게 많은 사람이다. 주변 사람을 잘 챙기고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인생을 아주 멋지게 살아왔으며 지금도 부지런하고 재미있게 살아가는 중이다. 또 아지랑이는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다. 이렇게 서술한 것 외에도 너무 많은 장점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걸 다 나열하면 아지랑이 주접집이 될 것 같아 여기서 자제하도록 하겠다. 어쨌거나 아지랑이는 내가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며 내가 가장 되고 싶은 유형의 사람이다. 그래서 아지랑이를 만나고, 친해진 이후로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이 아지랑이인 것 같다.
아까 말했듯이 나는 부럽다는 말을 입 밖으로 잘 내뱉지 않는다. 대체 왜 그런 걸까? 우선 나는 부러움이라는 감정 자체는 좋게 여긴다. 부러움은 자기반성과 다짐의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점이 너무 부럽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게 늘 한 문장이다.
그럼에도 내가 입 밖으로 잘 내뱉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그 속에 질투가 들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나는 자존심이 강한 편이다. 그와는 달리 자존감은 낮은 편이다. 자존심 강하고 자존감 낮은 이 성격의 소유자가 부럽다는 걸 입 밖으로 내뱉어버리면 그 순간부터 나 자신의 모자람을 너무 쉽게 인정하는 것 처럼 되어버릴까 사실 한편으론 두렵다. 이 못난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점이 건강하지 못한 부러움을 달고 살게 만드는 것 같다.
다시 아지랑이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정말 모순되게도 아지랑이에게는 부럽다는 표현을 잘한다. 우습게 아지랑이에게도 말이 아니라 글로 표현을 잘하는 거지만. 어쨌거나 아지랑이에게 부럽다는 표현을 잘하는 이유는 질투조차 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해를 살까 봐 설명을 덧붙이자면 가늠이 안 될 정도로 돈이 많은 부자에게는 박탈감조차 느껴지지 않듯이, 아지랑이의 성격은 내가 어떠한 노력을 하고 발버둥 쳐도 닮지 못할 성격이란 걸 알기에 질투조차 생기지 않는 것이다. 아지랑이에게는 건강한 부러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건강하고 건강하지 못한 부러움의 차이는 ‘타고난 것’이 기준이 되는 것 같다.
외적인 면모는 정말 많은 노력을 한다면 솔직히 조금은 따라잡거나 그를 능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고난 성품과 성격은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바뀔 수 없는 것들이다. 내가 아무리 성장하고 좋은 사람이 된다 한들 나는 나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살면서 아지랑이를 제하고도 또 다른 부러운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그 수는 셀 수 없이 많을 지도 모른다. 평생토록 부러움을 느끼고 살 거라면 차라리 건강한 부러움을 느끼며 살아야겠다. 위에서 말한 타고난 성품만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부럽다고 말할 수 있는 부러움 말이다.
나이를 하나 둘 먹으면서 ‘솔직함’이 얼마나 큰 매력이고 강점인지를 서서히 알아가고 있다. 부러움을 부럽다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함을 가져야지. 솔직함이라는 무기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지.
장기하는 부럽지가 않다고 말했지만
나는 아니,
부러워. 부러워. 부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