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

by 임은하

짝사랑인지, 집착인지, 미련인지.

그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듯한, 모든 것이 모호했던 나의 마음에 대해 안녕을 고하려 한다.



이 마음은 스물 두세살, 20대 초반부터 쭈욱 가지고 있던 무형의, 그렇지만 존재감 만큼은 뚜렸했던 무언가이다.



살면서 내 두 눈 앞에, 그것도 아주 가까이 마음만 쉽게 먹으면 닿을 곳에서 꿈에 그리던 이상형과 마주하는 진귀한 경험을 했던 나는 일주일에 몇번씩이고 그를 보러 갔다.



이상형인 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자신감 없어지던 나는 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 아까는 이렇게 말할걸.', '아, 아까는 이렇게 받아칠걸' 하는 후회를 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마음이 커질수록 계속해서 작아지는 나 자신이, 알 수 없는 이 마음과 감정이 어느 순간부터는 견디기 힘들어서 발길을 뚝 끊었다.



'안 보면 안 보고 싶어지겠지, 안 보면 생각 안나겠지' 라는 오해는 글을 쓰는 시점을 기준으로 어제까지도 이어졌다.



나는 단 하루도 그를 잊어본 적이 없다.



나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멋진 사람이 되었을 때 그 사람 앞에 서보겠다던 나의 다짐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던 내가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깨우쳤을 때, 그리고 그 앞에 설 수 있던 온전한 용기가 생겼을 때는 이미 그를 볼 수 있던 장소가 사라지고 없었다.



장소가 사라지니 '그리움' 이라고 그나마 칭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져 갔고, 이젠 어디서 그를 마주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했다.



그러던 중, 참 오랜만에 꿈을 꿨다.



꿈에 그가 나타나 주었다.



눈을 뜨자마자 인스타그램을 켜 그의 계정에 들어가보았다.



이도 참 웃긴게 '보지 않으면 안보고 싶겠지'라는 이상한 신념으로 팔로우도 끊었지만 그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이미 외워버려서, 그리고 꽤나 자주 검색까지 해버려서, 이니셜 하나만 쳐도 그의 계정이 나의 검색창 최상단에 뜬다.



어쨌거나 그의 최신 소식을 보아하니 새로운 일을 시작한 듯 보였다.



참 잘생긴 사람인데, 드디어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일을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



그 소식을 보니 참 잘됐다 싶었지만 이때까지 가지고 있던 나의 감정이 '사악-'하고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바람에 모래알이 흩날리듯 사라졌다.



모래처럼 가벼운 마음이었을까?



결코 그렇지도 않다.



그에 대한 마음이 누적된 시간, 그리고 그로 인해 정립된 나의 가치관만 보아도 그렇다.



나도 모르게 사진을 보자마자 이젠 나랑 정말 닿을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서인지,


아니면 사람 앞에 보여지는 일을 택한 사람이 어떤 삶을 앞으로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모습들이 그려져서 그런것인지, 결정적으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구나’ 라는 걸 깨달아서 그런것인지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마음 정리가 한순간에 되어버렸다.



얼마 전 나태주 시인의 '내가 너를' 이라는 시를 마주하고 그에 대한 나의 마음은 대체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참 깊게 해보았는데 지나온 시간과 내가 겪은 감정 그리고 고민의 깊이가 무색할 정도로 그에 대한 마음이 정말 가볍게 소멸되었다.



마지막이라는 걸 알기라도 한걸까?


작별 인사라도 하러 온 것 처럼 어떻게 그가 내 꿈에 나온 건지, 신기하기도 하고 이렇게 쉽게 소멸된 나의 마음이 의아하기도 하고 또 한번 복잡 미묘해졌지만 그 사람 한명만 그리며 그 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마음을 내어주지 않으려 고집하던 내 자신에게도 나를 내어줄 수 있는 새로운 자리가 생긴 것 같았다.



그 사람 외에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는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며 나의 마음을 새로이 하려한다.




글을 쓰는 오늘 밖에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다.



비가 내리면 무언가 쓸고 내려가듯


감정과 일, 새로운 세계에 직면한 나와 고마웠던 그에게 불필요한 것들은 남기지 않고 평안이 찾아오길 바라본다.



좋아했어요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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