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글

ver.2403

by 마차

기운차게 글을 써보겠다고,

오늘 하루가 거의 다 끝나가는 밤 9시에

집 근처 카페에 들어왔어.


짠순이인 나로서는,

오늘 하루 커피값을 한 번 더 지불하겠다는

나름의 큰 용기와 결심이었지.


그런데 지금 시간은?

벌써 한두 시간이 흘러 흘러..

밤 11시에 가까워졌어.


친구의 카톡에 답장하고,

내일 갈 카페를 미리 찾아놓고,

내일 친구와 보낼 외롭지 않은 하루를 상상해 보고,

오늘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을 다 했는지 다시 체크해 보고,

곧 만날 남자 친구와의 데이트를 기다려보고,

지원 사업 같은 것들을 뒤적여보며

그 시점이 되었을 때 놓치지 않도록 캘린더에 메모해 두고,

이제는... 정말 이제는..

글을 써야 할 때가 다가왔더라고..!^^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어.

글을 쓸 용기가 없어서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것을.

.

.


매달 글을 쓰고, 엮는 나이지만

글을 쓰는 것에 푹 빠져 완전히 몰입하기 전까진 나도,

글쓰기를 마주하길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인간들 중 한 명이야.


글쓰기는 어쩔 땐,

그 누구보다 재밌는 친구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글쓰기는 또 어쩔 땐,

그저 외로운 작업에 불과했거든.


사실 요즘 난,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친구와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생산성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은 행동들도 하고..

혼자 시간을 보낼 땐 10분, 30분을 칼같이 쟀다면

편한 친구를 만나면 시계를 보지 않고

어쩌면 시간 허비에 가까울 정도로 그저 시간이 흘러가게 두고 있어.


그런데, 참.. 이상한 게 뭔 줄 알아?

친구를 만날 땐, 외로움이 그리워지고

혼자 있을 땐, 외로움을 걷어내고 싶어져.

사실 예전엔,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도 나는

혼자 있어 외로움을 느껴야 생산성이 높아지고

나의 성장에 투자할 시간도 절대적으로 많아지니..

외로움이 곧 나를 성장시키리라고 믿고 있었거든.


그런데.. 어느 한계를 넘어서니,

그냥 외롭기만 하더라.


사실 우리,

나 혼자 성장하는 걸 바라는 게 아니잖아.


삶이란 건 곧..

사랑하는 사람들이랑 사소한 시간들을 쌓아가는 거잖아.

그런데 나는 그 사소한 시간을, 그 삶이라는 귀한 시간을

비생산적이라는 이유로,

나의 성장에 도움이 안 될 것 같다는 이유로

다음으로 미루고, 또 다음으로 미루고 있었더라.


미루고 또 미루면..

언제 그 시간을 보낼 건데?

아..

그러네.....

.

.

.


두 달에 한 번꼴로 부모님이 서울에 오셔.

서울에 있는 오빠랑 나를 보러.

이것조차 어쩔 땐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었어.


‘이 프로젝트 제대로 끝내고 싶은데..

부모님 오셨다가 가면, 다시 집중하기 쉽지 않은데..’

부모님께서 지금의 내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으시니,

뭐라도 결과물을 보여줘야 될 것 같은 마음이 컸어서..

더 그런 부담감이 들었나 봐.


“짜잔!”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사실 여전히 남아 있지.


그런데 사실 애쓰면 더 안 되는 일도 있잖아.

특히, 장기적인 게임에 뛰어든 나로서는

더 힘주고, 애쓰려 하면 안 되는 거였더라고.


지금 이 시점에선, 당장은 돈이 안 되더라도

옳은 선택을 쌓아가야 했으니까.


그래서 난.. 더더욱

내가 꿈꾸는 일을 자연스럽게 하루하루 쌓아가면서,

사랑하는 이들과의 사소한 시간도 충실히 보내야 했어.


이 글을 쓰며, 알게 되었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사소한 시간들이

어쩌면 삶의 전부인데..


그보다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허공을 붙잡으며

사랑하는 이들이 부담스러워지고,

사랑하는 시간들이 점점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었다는 걸 말이야.


나는 무엇이 되고 싶어서

외로움을 달갑게 맞이했을까?

.

.


남자친구와는 일주일에 하루 정도를 만나.

주로 그 시간 동안 우린,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거든.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난 나에 대한 실망감이 차올라..

편하게 논 죄,

그저 아무 걱정 없이 시간을 보낸 죄,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은 죄,

성장하지 않은 하루를 보낸 죄...


이런 죄들을 지은 것 같아서 난

나 자신에게 자책감과 좌절감이라는 벌을 내렸어.

그런데 나,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사실 잘못한 거 없더라고..


내가 나에게 부여한 엄격한 룰들을 못 지켜서

그에 대한 벌을 줘야 모든 심판이 끝나는..

그런 수많은 심판들 중 하나였던 거였어.


난 무엇이 되고 싶어서,

이 세상에게 무얼 바라고 있어서,

그리 엄격하고 뾰족한 것들을 나의 삶에 도입시켰을까?


글쎄.

부끄럽게도, 그리 쉽게 답을 내리진 못하겠어.

조금 떠오른 게 있다면..

그저..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못 미덥다는 이유로,

조금이라도 오늘보단 내일에 더 가까이 가고 싶다는 이유로

나에게 생산성을 요구하고, 우선시하고, 사랑하도록 강요했던 거였어.


나의 현재를 외면하고 싶어서

현재를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는데 시간을 보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일이 밝아왔고..

또 그 오늘을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는데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내일이 밝아오길 기다렸어.

그러다 보니 어느새 새로운 내일이 밝아왔지..

.

.


나는 언제쯤 이 삶을 멈출 수 있을까?

그저 내일을 기다리기 위해 오늘을 보내는 삶 말고,

오늘이 벅차도록 감사해서 오늘을 보내는 삶을 살고 싶어.


나 오늘,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까?

.

.

.


그저 오늘을 보내고 싶은

소박한 나와 너에게,

오늘의 솔직함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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