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이 남도록 사는 것만큼
미련한 것은 없었다.

MACHA ver.2401 여섯 번째 이야기

by 마차

멀지 않은 과거의 나를 생각해보면,

난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려했던 사람이었다.

‘이 일, 꾸준히 지치지 않고 오래 해야 하니까

오늘에 너무 힘을 주지 말자,

에너지를 다 쓰진 말자..’ 라면서..


그러나 사실은?

그 일, 꾸준히 지치지 않고 오래 하려면

오늘에 최선을 다해 힘을 있는 힘껏 쏟아 부어야 했다.


에너지를 다 소진할 듯이, 아니? 없던 에너지도 끌어다 써야지만

그 일에 확신과 결과, 그리고 애정이 더해져

더 오래, 그리고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오히려..

지치지 않고 오래하려고

에너지를 아끼려 했던 그 날들 때문에,

난 더.. 지쳐갔고,

오래할 수 없는 생각과 감정, 그리고 결과가 이어져갔다.

왜?

최대한 에너지를 안 쓰려고,

최대한 시간을 안 쓰려고

하루를 ‘계산적’으로 썼으니까..

.

.


하루를 ‘계산적’으로 쓴다는 것은,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내가 투자한 시간, 투자한 에너지보다

더 큰 결과물이 나에게 오길 바라는 욕심’이

드러난 하루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알맹이 없는 하루라고.. 말할 수 있었다.

‘2시간동안 글 썼으니까 오늘은 된 거야!’

‘오늘 콘텐츠 업로드 했으니까.. 잘하고 있는 거야!’

라는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하루’에는 참 많은 안정감을 주었다.

오늘 2시간이나 글 썼으니까.

오늘 콘텐츠를 업로드 했으니까.


“근데 그거 말고는?

그거 말고는 무엇을 잘했는데?”

라는 질문을 그때의 나에게 물어본다면..

아주 얼굴이 시뻘게져서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행위가 목적이 아니라,

글로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고, 용기를 주고,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인데..


그날 쓴 글은 몽땅

‘글을 쓴다는 행위’라는 목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니 말이다.


콘텐츠를 업로드한다는 행위가 목적이 아니라,

콘텐츠로서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깨달음을 선물하고,

나아가 누군가의 인생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이 목적인데..

그날 업로드했던 콘텐츠는 몽땅

‘콘텐츠를 업로드 한 행위’라는 목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목적을 둔 글과 콘텐츠가

하루하루 쌓여간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나의 하루에도, 나의 인생에도

치명적인 손해이고 마이너스이니 말이다..


오늘 내 에너지, 시간을 아끼고자 하는 마음이,

오늘 하루를 어영부영, 어정쩡하게 보내는 순간이,

결국..

내 인생의 에너지와 시간을

더 낭비하는 것이었다.

.

.


김성근 감독님은

야구선수들을 아주 독하게 훈련시키기로 유명하다.

나도 그분의 책을 읽기 전, 아빠에게

“김성근 감독님은 혹독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훈련으로 유명하다”

라는 말씀을 들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알려진 이 사실이

실제로는 아니었음을, 다른 뜻이 있었음을..

김성근 감독님의 책을 읽으며 깨달을 수 있었다.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가늘고 길게 살겠다며 어깨를 아끼고,

훈련도 안 하고, 등판도 안 시킨다.

그러면 선수로 살아남을 수 없다.

이름을 남길 선수로 자라지 못하고 사라진다.

반면 굵고 짧게 살겠다고 죽어라 연습하면

거기서 잠재 능력이 개발되고 비로소 꽃을 피운다.

그런데 만약 ‘이것이 나의 베스트다’싶을 만큼 연습했는데도

여전히 실력이 모자라고,

도저히 못 살아남을 것 같다면?

그러면 그 길은 내 길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으니

더 빨리 다른 길을 찾아 노선을 틀 수 있다.

그래야 아무런 미련도 남지 않는다.

수준을 높이지 못해서 잘리든,

어깨가 나가서 잘리든 사실 똑같다.

어떻게 보면 어깨가 나가서 잘리는 게

차라리 낫다.

깨끗이 야구를 그만두고 미련 없이 다른 길을 걸으면 되니까.

가늘고 길게 살겠답시고 어정쩡하게 해버리면

그 시간은 전부 낭비가 된다.

야구에서도, 인생에서도 그렇다.

- 김성근 저 <인생은 순간이다> 중 -


지난날의 나는,

부끄럽게도, 어정쩡한 하루들을 쌓아왔던 것 같다.

오래해야 한다며, 지치지 않아야 한다며

나와, 나의 시간과, 나의 에너지.. 그리고

나의 마음까지 아끼고, 또 아끼고 있었으니 말이다.


김성근 감독의 말에서,

그 ‘혹독한 훈련’의 진짜 의미를 깨닫게 됨과 동시에

유독 어느 한 단어가 강조되어 보였다.


그 단어란?

바로.. ‘미련’이다.


난 과거에 미련이 없을까?

난 어제에 미련이 없을까?

난 오늘에 미련이 없을까?


비교적 안정을 되찾은 요즘은

다행히 미련이 남지 않은 하루들을 쌓아가고 있으나,

조금 더 먼 과거의 나를 돌아볼수록,

미련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건.. 사실이다.


‘그날 하루.. 이렇게 한번 살아볼걸...’

‘그 시기에 더 이상 무너지지 않게 나를 좀 더 챙겨줄걸....’

‘그때.. 마음의 짐을 좀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볼걸.....’

‘그 프로젝트.. 사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끝내는 것에만 급급했었는데..

정말 최선을 다해볼걸.. 진짜 목숨 걸고 달려들어볼걸....

목숨걸고 그 프로젝트에 임했다면, 현재의 나는 지금보다

좀 더 멋진 사람이 되었겠다.. 아.. 정말 아쉽다. 아쉽고.. 아쉽다..

그저 아쉽다...’


내가 목숨 걸고 콘텐츠를 만들었다면..

부모님의 반대에 이렇게 까지 영향을 받았을까?

아니..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목숨걸고 프로젝트를 완성시켰다면..

나의 프로젝트를 그저 운에, 운명에 맡겨버렸을까?

아니..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목숨걸고 내 인생을 만들어간다면..

불안과 두려움이 나의 지금을 잡아먹도록 내버려둘까?

아니..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

.

.


어린 아이는

부모의 행동을 보고,

그것을 ‘모방’하여 따라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본능적으로 누군가를 ‘모방’하면서

새로운 행동을 시작하고, 그것이 습관으로 자리 잡히면서

어제와 다른 나로 성장하게 된다.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 엄마, 아빠는

어린아이인 나의 눈으로도,

어른이 된 나의 눈으로도,

될 수 있으면 일을 안 하려 애쓰셨던 분이셨다.


좋고 나쁨을 떠나,

부모님께선, 일하는 곳에서만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성향이셨다.

퇴근하고 집에오면? 이제 일에 대한 생각을 없애는 그런 성향.

그런데 나는 좀 달랐다.

난.. 매일, 매 순간 내가 하는 일을 생각하고 있었고,

사실 그러고 싶었다.

내가 하는 일이 곧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으니..


출근과 퇴근이 명확했던 부모님께선,

매 시간을 출근상태로 살아가는 딸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꽤나 많고 깊은 삐그덕거림이

있었던 것이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자,

조금은 더 명확해졌다.

내가 바라봐야 할 사람,

즉, 나의 멘토, 롤모델, 본보기라고 여길 사람은

부모님의 성향이 아니라, ‘나의 성향과 비슷한 누군가’였다는 것을..


그런 점에서,

김성근 감독님은 참 배우고 싶은 분이었다.


집보다 야구장이 더 좋은 사람,

퇴근이 없는 사람,

매시간, 머릿속이 야구로 채워지는 사람,

바로 내일,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삶에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가 적은 사람

내가 원하던 삶이었고,

내가 원하던 시간이었다.

.

.


모방의 힘은 꽤나 강력했다.


‘당연히’ 출근과 퇴근이 있는 삶을 살아왔던

부모님을 보고자란 나는

‘당연히’ 출근과 퇴근이 있어야 할 것만 같다.


그래서 어쩌면..

이런 모방의 비밀과 축적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나의 목적도 모르는 채,

나의 성향에 맞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방과 관련해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환경’이었다.

새로운 투썸에서 일을 시작하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예전에 일했던 투썸에선

손님이 그리 많지 않은 매장이라

주문이 들어오면, 일일이 레시피를 보며 음료를 만들었는데..

여긴 진~~짜 바빠서.. 외워서 음료를 만들어야하네..?

흐어.. 외워야지 뭐..’

.

.


예전에 일했던 투썸에선

레시피를 꺼내고, 만들어야 할 음료를 레시피 속에서 찾고,

무게를 재차확인해가며 음료를 완성시켰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모든 게 생략되었고,

나의 머릿속 숫자들이 음료를 완성시켜준다.

이처럼..

내가 과거에 어떤 환경, 어떤 직장,

어떤 카페, 어떤 투썸에서 일했는지에 관계없이,

지금 내가 있는 ‘그곳’에서 함께하고 있는

‘그들’의 행동과 움직임을 보고, ‘모방한다.’


그리고 그 다음부턴?

‘모방한 그 행동’은

곧, ‘나의 행동’으로 ‘자연스레’ 습득된다.


때론, ‘옳은 행동보단 그른 행동에 가까운 행동’도

‘자연스레’ 습득된다는 것이..

‘환경’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모방’의 가장 큰 취약점이었다.


그러니.. ‘환경’이 중요하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내가 옳게 성장하고 싶어도,

‘환경’에 의해, ‘그 속에서의 모방’에 의해

옳지 않게 성장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난,

어떤 환경을 찾아가야 하고,

어떤 환경을 피해가야 할까?


지금의 생각에서 볼 땐,

조금 추상적이지만?

‘큰 꿈이 있으며, 현재에 충실한 사람’들이 모인 환경을 찾아갈수록,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귀한 성장의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집단으로 만나지 않는 이상

1:1로 만나서 같이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는데,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 이 사람은 큰 꿈이 있고, 현재에 충실한 사람이구나?’

싶으면.. 판단하고 생각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다음에 또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아쉽게도, 내 삶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함께 쌓아갈 사람이 아닌 것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랑 함께 시간과 에너지를 쌓아갈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이

나보다 ‘낮은’ 사람이라거나, 나보다 ‘대단하지 않은’사람이라는 마음은

절대, 절대, 품으면 안 되는 마음이었다.


그저, 나와 시간과 에너지를 함께 쌓아가지 않을 사람일 뿐이지,

그 사람보다 내가 우위에 있어서 그런다거나,

그 사람보다 내가 더 잘나서 그런다거나,

그 사람보다 내가 더 뛰어난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다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부모님과 내가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내가 부모님보다 낫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부모님의 삶의 방식은 그것이었고,

나의 삶의 방식은 이것일 뿐이었다.

.

.


사실,

‘내가 누군가보다 우위에 있는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은,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내가 누군가보다 우위에 있는 마음’을 품는 그 순간,

‘누군가 나보다 우위에 있는 마음’도 함께 품게 되는 것이니까..

결국 이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래의 나를 향해 달려가는

경기를 해야 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내가 아닌 웬 낯선 사람의 인생을 향해 달려가는

경기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

.


어쩌면, 우리 부모님도

사실은 ‘내가 누군가보다 우위에 있는 마음’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간호사.. 좋잖아, 취업도 잘되고, 월급도 많고..

프리랜서는.. 불안정해, 네 마음도, 수입도..

그러니 다시 돌아와서 공부해보는 거 어때?”

.

.


이러한 반복적인 부모님의 물음에,

때론 무서워질 때도 있다.

그 압박감이 무서운 게 아니라..

나도 그런 우위를 갖게 될까봐.. 무서웠다.

자주 마주하는 환경 속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을

‘모방’하여, 자연스럽게 나도 그러한 생각과 행동, 말투를

습득하게 되니 말이다.

그것들이 옳지 않은 것들에 가까울 지라도..


‘우위’는 때론,

나의 현재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나.. 이 시간 이렇게 보내도 되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요즘 뭐하고 있지?’


사실 그냥.. 내가 좋아서 보내는 시간은,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시간임에 분명했다.

그야.. 내가 좋아서 보낸 시간이니까.


‘나랑 같이 시작한 그 사람.. 잘되고 있네?

나도 그의 방법을 따라해야 잘될까..?

이때까지는.. 나의 방법이 틀렸던 것일까?’

.

.


물론, 누군가의 성장과정을 보며

배워야할 점은 배워야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했던 모든 과정들을

‘틀린 것’이라고 여기는 것만큼 비참한 건.. 없다.

오늘의 나는,

그 과정들로 만들어진 귀한 작품인데 말이다.

.

.


나를 알고,

나와 맞는 환경에 적절히 스며들게 하는 것은,

내 생의 가장 큰 업무이자, 책임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어떤 환경이 나에게 적합할지

찾고, 또 찾고 있는 듯하다.

생은 짧고,

그리하여 그 어떤 환경에 던져질지라도,

나와 그 환경이 섞여질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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