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라지지만,
글은 살아지니까.

MACHA ver.2401 다섯 번째 이야기

by 마차

2001년 7월 1일생인 나도,

이제 스무 살을 훌쩍 넘겨 어느덧 스물셋이 되었다.


스무 살이 정말 엊그제 같은데,

이젠 스무 살보다 스물다섯에 더 가까우니..

시간이 참 무섭고.. 어쩔 땐 시간을 향해 원망의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그럴까,

늙지 않기 위해,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기 위해,

불멸을 하기 위해, 불로장생을 하기 위해

세상에 있는 귀한 약초란 약초는 다 찾아다닌 진시황의 심정을

희미하게는 알게 되었다.


사실, 지금의 내 나이가 아직

죽음보다는 탄생에 더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은

젊든, 그렇지 않든,

언제나 죽음을 생각하도록 만든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세상과의 이별,

가끔은 믿기지 않는다.

‘내가 죽는다고?’

아무래도, 죽음이 두렵고 싫었나 보다.

.

.


글은, 수명이 길었다.

세월에 따라, 시대에 따라

자연스레 잊히고 묻히는 글도 있지만

세월에 따라, 시대에 따라

자연스레 전해지고 회자되는 글도 있었다.

인간과 다르게 ‘글’은,

불멸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참 부럽게도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글을 쓸 때면 마음이 참 편안해진다.


묵혀있던 내 마음의 소리가

배출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분명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았다.

‘불멸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나는 불멸할 수 없지만,

나의 과정과 생각과 마음과 기분을 꾹꾹 눌러 담은 이 글은

불멸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알 수 없는, 쾌락과 같은 기분이 짜릿하게 느껴지곤 한다.


종종 뉴스를 보면,

황망하고 어이없게 죽음을 맞이한 사례들을

쉽사리 볼 수 있었다.


물론 극히 적은 확률이겠다만,

0%의 확률은 아니니..

나에게도 그런 세상과의 이별이

언제든 불현듯 찾아올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가끔은 불을 끄고 잠을 자려고 누워있으면

‘자는 동안 천장이 확 내려앉아서 죽으면 어떡하지..?’

‘갑자기 심장마비가 와서 더 이상 살 수 없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배회하곤 한다.


그래서일까. 글을 쓰고 있으면,

‘혹시 내가 내일 죽더라도..

세상에 무언가는 남기고 가서 참 다행이다..’

‘혹시 내가 죽는다는 사실도 모른 채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더라도..

세상에 내 생각을 기록해둬서.. 참 다행이야’

라는 생각이 든다.


살고자 하는 마음이 클수록,

죽고 싶지 않은 마음도 크기에..

만일 죽더라도, 살아있는 듯한 영향력을 남기고 떠나고 싶기에..

이러한 생각들이 들었을 것이다.

.

.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큰 덕분일까,

그래서 그런지

‘오늘 하루를 귀히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


수많은 확률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 살고 있기에,

어쩌면 오늘의 나와 어제의 내가

살아있지 않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오늘 하루를 귀히 바라볼 수 있는 안목’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쭉 간직하고 싶은,

어쩌면 더 키워가고 싶은 안목이다.

그 안목이 반복되고, 축적된다면?

아쉬운 듯 아쉽지 않은

세상과의 아름다운 이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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