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CHA ver.2401 네 번째 이야기
‘살아있음’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무언가의 영역이라,
우린 그저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서
생을 보내고싶어 한다.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살아있음’이 곧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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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현명하고 지혜롭고 마음이 넓은 아빠라지만,
간호학과를 3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가
자퇴를 하겠다는 딸을 보며
너의 인생을 응원한다고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나름대로 엄마, 아빠에게
왜 나의 인생을 응원해주지 않냐며..
왜 나를 못 믿냐며.. 서운한 감정이 있었고
엄마, 아빠도 나름대로 나에게
왜 편한 길 놔두고 어려운 길로 가냐며..
졸업을 1년 앞두고 왜 틀어졌냐며..
안타깝고 답답한 감정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도,
그러한 상태이다.
가끔 엄마, 아빠랑 진지한 대화를 나눈
통화를 끝마칠 때면,
눈물이 차오르곤 한다.
‘나 정말.. 내가 품고 있는 이 꿈
진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꼭 이룰 거라 생각하고 있는데...
근데 왜,
왜 하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가치를 몰라봐줄까..’
오늘도 여전히 대립으로 통화가 끝맺음 되고..
초점이 없는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을 깜박였다.
그저 외로웠다.
그냥.. 그저 외로웠다.
뭐라 설명할 길 없이 외로움뿐이었다.
마음이 무거워져 생각이 무거워졌고,
그렇게 내 감정도,
마음과 생각의 무게가 합쳐져 더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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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인 기분에,
남자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방금 전 아빠와 통화를 했다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냥.. 시답잖은 이야기,
오늘 일어났던 이야기,
돌아서면 바로 까먹을법한 이야기를 했다.
마음과 생각과 감정이 무거울 땐,
가벼운 이야기로
위태롭던 나의 균형을
꽤 괜찮게 맞추어갈 수 있으니까..
남자친구와 가벼운 이야기를 어느 정도 하고나니,
마음과 생각 그리고 감정의 무게도 좀 가벼워졌다.
마음이 좀 편해지니, 그제야 아빠와 통화한 이야기를 꺼낼
용기가 생겼다.
내 이야기를 들은 남자친구는
그 어떤 말없이, 그저 묵묵히
내 이야기를, 마음을, 생각을, 감정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
꽤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뜨니
그 다음날 아침이 되어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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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엄마, 아빠의 말을 이렇게 안 들어본 적은 처음이다.
엄마, 아빠 입장에서도, 내 입장에서도
정말 처음.
‘그래서 서로가 더 힘든가..’
싶기도 하다.
어린 시절엔,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실수를 하면
길어야 몇 시간 혼나고 끝이었는데..
지금 느끼기로는,
휴학하고 나서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계속..
무릎 꿇고 손들고 있는 듯하다.
엄마, 아빠 얼굴을 보면,
목소리를 들으면
괜히 미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어쩔 땐,
차라리 그냥 내가
뻔뻔한 사람이었으면 좋았겠다 싶다.
뻔뻔한 사람이었으면,
이렇게까지 영향을 받진 않았을 테니까.
부모님의 반대에
이렇게 쉽게 깨지고 영향을 받아도,
그럼에도 부모님의 말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다.
살아있고 싶어서.
그냥 정말..
살아있음을 느끼며 살고 싶어서다.
살아있는 느낌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았고,
그래서 지금까지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았다.
솔직히 엄마, 아빠는
지금 나의 이 생각과 행동을,
사춘기가 와서 방황중인 소녀로 바라보는듯하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딸이
더 이상 이 방황을 하지 않을 거라는, 그만 둘 거라는
확신과 바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나의 생각과 행동은
방황보다는 가치관에 가까웠다.
물론, 내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지금 내가 방황 중인지,
나의 가치관대로 살고 있는지 정도는
구별할 수 있으니 말이다.
솔직히 말해
가치관이면 어떻고,
또 방황이면 어떤가..
싶기도 하다.
가치관이면 가치관대로,
방황이면 방황대로
그 과정 속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깨닫게 되는 것은
동일하니 말이다.
어쨌든,
방황인지 가치관인지 모를 오늘이
그냥 살아있음 했다.
부디 살아있음 했다.
그저 그것뿐이었다.
과거 어느 시기에는
엄마, 아빠의 반대가 너무나 쓰라려서,
그 반대를 어떻게든 응원으로 바꾸려고 애썼다.
그래서 결과를 보여주려 했고,
그에 맞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또 부모님께 인정을 받지 못할까봐 좌절했고, 무너졌다.
그렇게 좌절하고 무너진 뒤, 충분히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날들 또한
무기력이라는 이름을 빌려 내 생을, 삶을 허비하곤 했었다.
다시일어나면 뭐해, 어차피 해도 안 될 건데..
어차피 해도 인정 못 받는데..
최선을 다하여 오늘을 살아도 응원을 못 받는데..
하는 생각들에 짓눌려 침대와 한 몸이 되었던 시기도,
꽤나 있었다.
주기적으로 힘없이 쓰러지는 나를 보며
마음에도 없는, 수동적인 하루를 보내는 나를 보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든 생각을 바꾸고, 다르게 마음을 먹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진단과 처방을 내려주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부모님의 응원과 인정을 받기 위해 애써와서,
스스로가 지쳤을지도 모르겠다.
진짜 나의 꿈을 향해야 하는데,
그저 부모님이 만족하실만한 꿈을 향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과정을 즐기지 못했을 뿐더러
게다가 그 결과도 안 좋으면?
마음과 몸이 그대로 부서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재미없는 과정과 원치 않던 결과를 만나는 순간은
정말 더 이상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도대체 어떤 힘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지
그저 막막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난..
2024년부턴, 나로선 대단한 결정을 내렸다.
‘부모님의 응원과 인정을 받기위해 애쓰지 말 것,
그저.. 나 자신에게 응원과 인정을 받기위해 노력할 것’
살고 싶어서,
정말 살고 싶어서 이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나도 몰랐던 나의 이 속마음을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그리 마음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건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2024년의 시작 무렵
나의 진솔한 마음과 의식을 알아차릴 수 있어
참 다행이다.
그래서.. 한편으론
기대가 참 많이 된다.
하루, 한 달, 1년 동안,
얼마나 재밌을지..
얼마나 성장할지..
당연한 말이지만,
2024년이라는 1년을,
재밌고, 성장하는 한 해로 보내려면
이번 한 달이,
재밌고, 성장하는 시간이 될 수 있어야 했고
오늘 하루가,
재밌고, 성장하는 시간이 될 수 있어야 했고
지금 이 순간이,
재밌고, 성장하는 시간이 될 수 있어야 해서..
일단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재밌고, 성장하는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
2024년의
‘오늘 하루 목표’이자,
‘최종 목표’이지 않을까 싶다.
그 어느 순간에도
살아있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