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CHA ver.2401 일곱 번째 이야기
1년 전, 자기계발 모임에서 처음 알게 된 언니와
그로부터 1년 뒤인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같이 밥을 먹고.. 카페에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단골 주제인 ‘연애’ 카테고리로 대화를 시작했다.
- 신영아, 너는 연애해?
- 네!! 저.. 5년 동안 연애하고 있는데요,
제가 중3 때부터 고3 때까지 거의 4~5년을 쫓아다녔어요 ㅋㅋㅋㅋ
무섭죠..?ㅋㅋㅋㅋㅋㅋ 어느 정도였냐면...
우연을 가장해서라도 그 애랑 어떻게든 스쳐 지나가보려고
애썼을 만큼요.. 좋아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이렇게 오래 만나고 있네요..
- 와... 나 처음 들어
- 네?? 어떤 걸요?
- 보통 사람들은.. 남자친구가 나를 이만큼 좋아해 준다..
나를 이렇게 많이 사랑해 준다..라고 말하거든?? 근데..
누군가를 이렇게 많이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하고
표현하는 사람은.. 신영이 네가 처음이야.. 말할 때.. 보였거든.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언니의 말을 듣고.. 나도 처음 깨달았다.
‘아.. 좋아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시간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행복하게, 또 재밌게 만들어주었구나..’
‘주체하다’라는 것은 ‘처리하다’, ‘감당하다’라는 뜻과 유사했다.
그러면.. ‘주체할 수 없다’라는 뜻은?
‘처리할 수 없다’.. ‘감당할 수 없다’라는 뜻이 되었다.
만일, 중학교 3학년의 내가
그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부끄러워..
나 혼자 내 감정을 처리했다면?
그리하여 내 마음을 감당했다면?
내 인생에선, 그는 그저..
같이 중학교를 나온 동창생에 불과했을 것이다.
(특히 그는.. 내가 그에게 마음을 처음 표현했을 당시에
나에게 큰 마음이 없었는데.. 내가 하도 끈질기게 따라다니고,
또 따라다니니.. 어쩔 수 없이 만나주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사귀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듣기도 했다. ^^;ㅋ)
어쨌든 난,
그에게 ‘나 너 좋아해’라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표현했고, 행동했고, 그리하여 전달했다.
좋아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것은..
연애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과 같이 이 글을 쓰는 것과 더불어
콘텐츠로서, 대화로서, 표정으로서
나의 생각을 이 세상에 남기는 일을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도무지 주체할 수 없어 표현했고, 행동했고,
그리하여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마음은,
때론 나에게 안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어도
때론 나에게 실망을 안겨 주어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었다.
너무 좋아하니까..
그를 좋아하는 마음은,
때론 나에게 상처를 가져다주어도
때론 나에게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시간을 안겨 주어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를 너무 좋아하니까..
세상에 나의 생각을 남기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은,
때론 나에게 원치 않았던 결과를 가져다주어도
때론 나에게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을 안겨 주어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었다.
세상에 나의 생각을 남기는 것을 너무 좋아하니까..
이렇게 지속된 시간과 시간이 켜켜이 쌓이고..
이 시간 속에 있던 에너지와 에너지들이 뭉쳐지면?
엄청난 무언가가 되어 나에게 다가오곤 했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가 되어 나타나곤 했다.
.
.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무언가를 이루려면,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뿌연 안개 속에 있는, 미지수인
그 절대적인 시간을
그럼에도 채울 수 있는 것은..
좋아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시간이었고
좋아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였다.
작년 10월, 세상을 떠나신 외할아버지는,
좋아하는 마음을 주체하지 않고 살아오셨다.
어느 정도냐면..
손녀딸들한테 일주일에 한번 전화를 하셨고,
딸들한테는 하루에 한번이상씩 전화를 하셨다.
이렇게 매일같이 아빠에게 전화를 받은
엄마와 이모들은,
때론 화를 내기도 했다.
“아빠! 어제 그 얘기 했잖아..”
때론 아빠를 못 이기기도 했다.
“아휴.. 알았어 아빠! 오늘 퇴근하고 잠깐 들를게~”
때론 아빠의 재치 있는 입담 덕분에 입이 귀에 걸리기도 했다.
“하여튼 아빠 입담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ㅋㅋㅋㅋㅋㅋ"
때론 아빠의 하루 일과를 들어주기도 했다.
“오 이번 장날에는 많이 팔았네~?? 우리 아빠 능력자네!”
할아버지는..
손녀딸과 딸들을 향한 좋아하는 마음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체하지 않고 표현했고, 행동했고, 전달했다.
‘손녀딸.. 지금 근무 중일 텐데 괜히 방해하는 거 아닌가?’
‘우리 첫째 딸.. 혹시 운전 중이면 어쩌나.. 나중에 전화해야지’
하는 걱정 없이, 그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고, 행동했고, 전달했다.
딸들에게 제발 적당히 전화하라는 말을 들어도,
그 다음날이 되면 여전히 딸들의 단축번호를 꾹 누르는 그였다.
너무 보고싶으니까,
너무 좋아하니까,
너무 사랑하니까,
대부분의 아빠들처럼,
대부분의 할아버지들처럼
그저 과묵하고 점잖은,
자식들이 귀찮아 할까봐 전화를 아끼는 할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가 아니라서 참 좋았다.
‘할아버지가 날 많이 생각해주시구나..’
‘할아버지가 날 많이 사랑하시구나...’
라는 걸 매 순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
.
그랬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고,
행동하지 않으면 모르고,
전달하지 않으면..
심리를 꿰뚫 수 있는 박사가 와도.. 모른다.
내가 마음속으로 품고 있는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속에 품고만 있고,
표현하지 않는다면?
행동하지 않는다면?
전달하지 않는다면?
내가 내 마음속에서 품었던 것이라도..
언제 품었냐는 듯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내가 진짜 원하지 않아서,
아님 나의 용기가 부족해서
표현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고, 전달하지 않은 시간들이 쌓이면
‘망각’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그리고 나의 꿈을 잊어버린다.
내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도.. 흐릿하다.
시간이 지나고 쌓이고 방치될수록
더더욱 흐릿해져간다.
간호학과를 3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
가족들에게 ‘휴학’을 하겠다 선언했을 때..
그때 난,
간호사가 아닌 다른 꿈을 위하여
인생의 시간을 바치고 싶다는 ‘표현’을 했고
‘행동’을 했고 ‘전달’을 했다.
가족들에게 ‘표현’하고 ‘행동’하고 ‘전달’했을까?
물론 그것도 맞다.
그러나 그때
내가 정말 ‘표현’하고 ‘행동’하고 ‘전달’하고자 했던 대상은
가족들이 아니었다.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에게,
지금 이 꿈은 아니라고, 경로를 바꿔야 한다고, 바꾸고 싶다고
‘표현’했고, ‘행동’했고, ‘전달’한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때 당시에..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이 아니면, 더 늦어지면..
설렘으로 가득차있는 내 꿈이,
내가 모르는 어딘가로 숨어 들어가 버린다는 것을.
추상적이라 생각되는 ‘꿈’도,
사실은 인격이 있어서..
자주 들여다봐주고, 맛있는 밥도 사주고, 사랑한다고 말도 해주고,
시간을 함께 보내줘야.. 토라지지 않았다.
“다음에 들를게!’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다음에 밥 사줄게!”
“음.. 사랑한다고 말하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해..”
“나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서.. 다음에 보는 거 어때?”
라는 말을 들은 꿈은.. 토라진다.
그리고 자연스레, 나의 인생에서 사라져준다.
그것이 서로를 위한 일이니 말이다.
꿈을 품었던 사람의 입장에선,
꿈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아직은 용기가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에너지가 없어서
그 꿈을 일단 방치해두고 있다.
그래서 찝찝하다.
꿈의 입장에선,
관심을 받고 싶어서, 사랑을 받고 싶어서
나 좀 봐달라고 갖은 노력과 발버둥 친다.
하지만.. 그 어떤 관심도 사랑도 받지 못한다.
그래서 너무 외롭다.
이렇게..
서로가 찝찝함과 외로움을 느낄 바에야,
그냥 꿈이, 그 사람의 인생에서 조용히, 자연스럽게 사라져 주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꿈’도 인격이 있다는 것을
무의식중에 알게 된 그 순간부터,
나에게 다가오는 ‘꿈’을
허투루 바라보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정성껏 돌보지 않으면,
이 꿈은 멀리 도망가 버리겠지?’
하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 꿈이라 확신하는 그것과
하루에 밥 한끼만이라도 먹으려 의도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매일, 깊~이 데이트 하며 두 세 시간을
진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와, 그 꿈의 바람이긴 하나..
나는 생각보다 많이 욕심쟁이라,
그 꿈만을 챙겨줄 순 없는 상황이었다.
그 꿈에게만 시간을 써주기엔 힘든 현재였다.
그래서.. 밥 한 끼는 같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시간..
적으면 10분.. 길면 1시간..의 시간을 매일 쓰며,
대화했다.
생각보다 짧고 굵은 매일의 데이트는,
나와 꿈의 사이를 꽤나 돈독하게 해주었다.
오히려 두 세 시간 데이트 하는 대신
일주일에 삼일정도만 만났다고 하면?
절대적인 시간은 훨씬 많지만..
만나지 않았던 사흘의 시간이 공백으로 남아,
깊은 대화를 이어가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단 10분이라도 매일,
그 꿈과 마주하여 대화하는 것이.. 필요했다.
왜?
매일, ‘연결’이 되어갔으니까..
짧은 10분이라도, 그 하루들이 쌓이게 되면?
아이디어와 실행 그리고 피드백이라는
일련의 과정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었다.
거기다가,
이것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매일 만나다가,
일주일에 세 번만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편한 옷차림에서
더 신경 쓴 옷차림으로,
바로 어제, 대화 나누었던 주제와 연관된 질문에서
요 며칠 뭐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일상적인 데이트 코스에서
조금 더 특별한 데이트 코스로
바뀐다.
그리고 이렇게 바뀌어가면서..
매일 만날 때보다 ‘부담’이 커지는 건 사실이다.
이 과정을 이제
‘일’과 ‘꿈’의 관점에서 보자면?
‘부담’은 훨씬 더 커지게 된다.
‘너무 이루고 싶은 꿈이라,
더 더 잘하고 싶은 마음’,
‘어제 못 만나 줬으니
더 잘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
.
결국 나는 꿈을 향해
나 너 좋아한다고,
너랑 오래오래 성장하고 싶다고
매일, 표현해야 했고, 행동해야 했고,
그리하여.. 전달해야 했다.
서로를 위해,
꿈이 나를 포기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