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양송이 수프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혹시 돈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씁쓸한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태어날 때부터 프리랜서는 아니었기에
과거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엔 중요한 단서가 빠져 있다는 것을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약 5년 후에야 깨닫기 시작했다.
물론 행복을 직접 살 수는 없다는 데엔 여전히 동의한다.
그리고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도 한몫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뻔한
대답일 수도 있겠으나,
행복에 다가가는 길을 닦아주는 도구로써
돈의 가치가 빛날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이다.
아마 과거에 쓴 글을 뒤적거리다 보면
알 수 있는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지금 이런 발언은
꽤 진보적인 생각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래, 우리는 이것을
금융치료(financial therapy)라 부르기로 했다.
전문직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니
정말 혹독한 세상이더라.
와중에 만난 은행 앱 알람은
지친 마음을 회복시키고,
막혀 있던 나의 창작력을 다시 흐르게 했다.
마치 커피 한 잔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는
강력한 에너지 드링크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카드 대금일에는 달갑지 않다)
어느 날은 밤을 꼬박 새워가며 진행했던
긴 작업을 마치고 나서 대가로 받은
입금 알림을 확인한 적이 있다.
[120,000원 *타행입금]이란 문구에 신이 나서
사고 싶었던 텀블러 하나를 주문했다.
사람에 따라 큰 금액은 아닐 수 있겠다 싶지만
그때 느낀 감정은 심플한 기쁨?
아니 그 이상이었다.
입금 알림을 확인하자마자
뒷 목에서 느껴지던 뻐근함이 풀리는 듯했고,
고장 난 배터리가 완전히 충전된 기분이었다.
그저 숫자로 표현된 보상이 행복의 수치였다면
병원에서 일할 당시에
나는 이미 도파민이 폭발해 버리고 말았을 것.
유독 그 새벽 작업 후의 입금이 생각나는 이유는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내 진심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의미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라 추측해 본다.
그날 저녁,
나는 어깨를 한껏 펴고
자신감을 되찾은 채 새로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금융 치료는 마법 같은 힘을 지니고 있는 게 틀림없다.
물론, 금융치료가 만능은 아니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약간) 들지만,
역설적으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들이 세상엔 참 많으니까.
가끔은 내가 쏟은 노력이나
진심과는 다르게 왜곡되어 버리면
보상이 크다 한들 상한 마음을 달래기가 힘들었다.
눈물 흘리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고
헛헛한 마음이라도 채우기 위해
“기분도 별론데, 오늘 치킨이다!”라고
나 자신을 위로하며 배달 앱을 열어보곤 했다.
먹고 싶은 것이 없냐며
본가에 연락해서 엄마를 보채기도 했다.
그러다.
화가 난 것인지
들뜬 것인지 모를 기분으로
디카페인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다시 모니터 앞에 앉는다.
단순한 자기방어적인 태도라고 느껴지기에
앞으론 지양해야겠지만,
아주 가끔은 의자를 당겨 앉게 만드는
힘이 되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금융치료는
내게 안정감이란 반투명 선글라스를 씌우며
선택의 자유를 준다.
안정감은 불필요한 자외선을 차단하고
잠시 걱정을 내려놓으라 말한다.
선택의 자유는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마치 시야가 확보되어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것처럼.
내 취향으로 가득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작은 사치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루가 훨씬 더 풍요로워진다.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저녁 식사,
내가 갖고 싶었던 책 한 권을 구매하는 일,
그 모든 것이 내가 느끼는 행복을
구체적인 형태로 만들어 준다.
안정감은
물질적인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 안정도 불안정함 속에서 피어났기에
결국 나를 안정으로 이끌었고,
나의 새로운 방향을 이끈다.
노력해 번 돈으로 얻은 경험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확인할 기회가 되었다.
좋아하는 것과 가치를 두는 것,
그리고 나 자신에게 주고 싶은 것들.
결국 나를 위한 일이자
나를 둘러싼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위함이다.
끌어당김의 법칙 마냥,
끼리끼리가 과학인 것 처럼.
금융치료가 과학인 이유도 얼추 비슷하다.
행복을 방정식으로 풀어낸다면 이렇게 표현할 것이다.
행복 = (삶의 여유 × 나만의 선택지) / 불필요한 걱정
이 방정식에서 '삶의 여유'는 중요한 변수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불필요한 걱정이 0이 되었을 때인데,
그땐 오롯이 삶의 여유와
나만의 선택지가 더해져,
아니 곱절로 내 품에 안길 것이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나라는 사람.
미우나 고우나 평생 대면해야 하는 '나'다.
금융치료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 준다면,
치료를 받아들이는 '수용의 태도'는
스스로를 존중하는 방식 중 하나.
나를 존중하기 위해
일을 통해 내 가치를 증명하고,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이렇게 애를 쓰고 있다.
결국, 행복은 작은 순간에서 온다.
행복은 꽤 멀리 있으면서도 그리 거창하지 않다.
하루의 끝에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지금처럼 불필요한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좋아하는 글을 쓰는 순간이면 충분하니 말이다.
금융치료는
소중하고 작은 순간들을 놓치지 않으려
달음박질 하는 순간을 위한 기초 체력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을 찾아 걷고 뛰기를 반복한다.
글을 쓰고
대가를 통해 나의 가치 있음을 느끼며,
과정에서 작은 행복을 채운다.
이 소소한 행복들이 쌓여
결국엔 나를 더 괜찮은 인간으로 살게 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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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양송이 수프 EP4. 자급자족 낚시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