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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별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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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Dec 30. 2023

[이별일지] 시작은 달콤하고 평범했을까? epi.1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라 사랑하지 않아서

이 글이 읽힐 때쯤이라면,
아마 그는 내 남자 친구가 아닌

나의 오랜 친구이자 남편으로서

곁에 남기로 약속했을 때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미래의 당신에게 차근차근 러브레터를 적어보려고 한다.


언젠가는 함께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이길 바라며.


22.06.08  15:24




참으로 로맨틱한 상상과 함께 푸른 여름을 맞이했다.


물론 나의 바람처럼

이 글을 그와 함께 읽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끔히 마지막 매듭을 짓지 못했더라도

분명 행복한 시절은 있었기에.


그 순간을 부정할 생각은 없고

이제는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추억과

아쉽다면 아쉬웠던 내 모습,

그리고 사랑에 대한 내 생각들을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숱한 오해와 감정적인 모습들로

도리어 상대방을 가해자로 만들고,

의도치 않게 내가 피해자가 되었던 지난날들에 대한 고찰.


그리고 앞으로 새로운 인연을 만나며

더 성숙한 만남을 이어갈 나와 당신을 기대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내가 만났던 이들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고 싶진 않다.


내가 선택한 사람이니까.


그가 영영 지울 수 없는 상처로만 남아있다면

내게 상처 주기만 했던 사람을

자진해서 선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이야기는 가장 최근의 만남부터

거꾸로 흘러가겠지만

가장 마지막으로 쓰게 될

스무 살의 추억까지 생각날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리움, 아쉬움, 미안함, 고마움

여러 감정이 스치겠지만

당사자에게 직접 전할 생각은 없다.


혹시라도 이 글을 마주친다면 그냥 비껴가도 좋고

잠시 멈춰서 '그래, 우리 그랬었지' 하며

내 시점의 추억을 들여다보고

우리의 시절 인연을 떠올리는 찰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디서든 행복하길 바라지만

그래도 '그때 그 여자를 놓친 건 후회되는 일이야.'

생각하길 바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욕심도 함께 전한다.


느린 이별은 없었다.

늘 바삐 이별하느라 해야 할 말을 다 하지 못했다.


지나 보니 해야 할 말이기보단

이 매듭진 선의 잘린 끝부분을

어떻게든 말끔하게 정리하고 싶었던 것 같다.


미련하게,

이별조차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이별을 후회하지 않을 방법은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만큼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임을 깨닫는 시기가 되었다.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단 슬픔보다

한 때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였던 우리가

인사조차 편히 나누지 못할 사이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슬플 뿐.


사람을 잃는 것은 항상 슬프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갈 인연이었으리라 믿으며

마음을 다스려본다.


서로에게 가장 최선의 타이밍에 나타나 주었듯

가장 최선의 타이밍에 멀어진 것뿐이다.


헤어짐의 이유와 서사는 다양하더라도

결국 서로를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한 결괏값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별은 그저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라는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사실임을,

이별을 고하는 입장이었든 듣는 입장이었든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속 편하다.


다른 이유를 붙잡고

상대방을 더 초라하게 만들거나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길 바란다.


우리는 서로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 헤어졌다.




Episode 1. 시작은 달콤하고 평범했을까?


그를 처음 만난 날은 22년도 초여름.


업무상 운전할 일이 많았던 그는

운전하는 게 힘든 일은 아니라며

350km가량 되는 거리를

힘든 기색 없이 단번에 와주었다.


내가 불안하고 힘들어하는 순간에도

주저 없이 밤길을 헤쳐와 나를 다독였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

단번에 마음먹고서

쉽지 않은 길을 와 주었다는 사실 자체와

고마웠던 마음을 전하고 싶은 동시에

내가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란 생각에 행복했다.


생각해 보면 사랑이란 감정은

화려한 꽃다발을 대동한 로맨틱한 고백이 아니라,

그가 나를 알아봐 주고

동시에 내가 그를 알아보는 순간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그와 첫 만남에서도 그랬지만,

만나서 종종 카페를 들리는 날엔

줄곧 일 이야기를 하곤했다.


나는 '우리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의 사랑하는 것 리스트가 있다면

1순위가 '일'이란 걸 알기에

다른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사랑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할 때

눈의 반짝임이나 즐거워하는 모습들을 보며

덜컥 이 순간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저녁때가 되면 술잔을 기울이며

각자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들도 펼쳐 보였다.


겉보기에는 성공한 삶이라 여겨질 수 있는

그에게도 아픔이 있었고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했던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나 마음이 아팠다.


나는 평소에도 리액션이 크고 공감을 잘하는 성격이다.


자신의 속을 내비쳐주는,

자신의 그림자를 내게 거리낌 없이 보여주는,

그에게 어쩐지 마음이 간 이유이기도 하다.


큰 감정표현 없이

덤덤히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어쩐지 누구도 알아주지 못하는 이 아픔을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있잖아, 괜찮으면 우리 한번 만나볼까?"

"그래요"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날.

많이 기뻐했던 것 같지도, 심장이 멎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고

앞으로도 더 알고 싶은 사람이었기에 흔쾌히 대답했다.


마음 한편으론 고민이 깊어져

좋은 사람을 놓쳐버리는 실수를 범하거나

쓸데없는 감정을 쏟고 싶지 않았다.


지난 연애의 대부분은

나의 감정적인 모습들로 인해 서로가 힘들었고

또다시 그 과정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시작은 달콤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사랑한다고 말하기엔 이르고

좋아한다, 애정한다, 호감 있다.

딱 그 표현이 어울리는 어느 시점.




만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을 무렵

'로또 1등이 되면 뭘 하겠느냐'라는 꽤 뻔한 질문에

서로 행복한 상상을 하다 내가 먼저 답했다.


"엄마 집 사드리고, 내가 살 집 사고,

차 바꾸고 나면 없지 않을까요? 오빠는요?"


"나는 너랑 결혼해야지. 2등까지만 돼도 그 정도는 될 것 같아"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그 나름대로

로맨틱한 고백이었을까 싶지만,
나는 별다른 대답 없이 웃었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나는 그와 가까운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일 년 하고도 수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그와 꽤 먼 곳으로 거처를 옮겨

이 글을 적고 있다.


23.12.3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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