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제 Aug 14. 2022

창작, 양날의 검

창작에 관하여

소위 창작이라 함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창작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기회이며 즐거움이다.


그러나 즐거움을 쫓거나 함께 걷던 사이가 변하고 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쁨에 도취된 채로 내가 앞서 나가기 시작하면 즐거움이라는 탈을 쓴 부담감이란 녀석에게 뒤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창작은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지만, 이면에는 다른 여러 기회의 문들을 닫게 하기도 한다.

되려 '유에서 무'가 되어 좌절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따금씩 들썩거리는 손과 눈과 귀를 멈출 수 없게 되고, 이내 창작이라는 양날의 검을 쥐며 새로운 길을 나선다.

때로는 순한 양처럼, 때로는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본질을 찾기 힘든 창작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손에 쥐어진 검을 어떻게 쓸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앞으로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다.




기뻐하는 것도, 앞서 나가다 뒤쫓기는 것도, 아무렇게나 휘두르다 스스로 손을 베이는 것도,

그러다 칼자루를 놓아버리는 것도,

모두 나 자신이다.


창작의 즐거움으로 인해 기쁠 때는 온전히 그 기쁨을 누리며 글이나 그림, 음악 등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나가면 된다.

그러다 부담감에 뒤쫓기게 되면 잠시 멈춰 서서 다시금 즐거움의 때가 올 때까지 쉬면 된다,

뒤쫓겨 덩달아 발을 내딛는 곳의 끝결국 막다른 골목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스스로 자책하거나 마음 다치는 일이 생기게 된다면 잠시 나 자신을 돌봐줄 여유를 가져야 한다.

방법을 몰라서 휘두른 칼날의 의도는 그저 '잘하고 싶어서'였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나를 돌보며 어떻게 해야 다치지 않고 휘두르게 될 수 있을지 잠시 멈춰 고민해 봐야 한다.


칼자루를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즐겁고 좋아하는 것들만 보고 싶어서 시작한 창작에 이런 고통이 따르는 줄 알았더라면 아마 시작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놓아버리고 싶다면 잠시 놓아두어도 괜찮다.

그러다 문득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 시작해도 된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하지만, 그 일이 내게 부담이 되고 힘겨운 일이라면 결코 옳은 때는 아닐 것이다.

그러니 잠시 놓아두어도 된다.




다만 기억할 것은, 우리는 포기하기 위해 창작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내 안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분출하기 위해, 더 나아가 나라는 존재의 개성을 인정받기 위함이었음을.

스스로에게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함이었음을.


잠시 주저앉아 쉴 때에도 당신의 무한한 가능성은 어디선가 숨 쉬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게 눈 감추듯 사라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