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택 앞에 설 때
행복을 묻지 않는다.
사랑도, 가능성도, 기대도
먼저 묻지 않는다.
나는 더 단순한 질문 하나만 남긴다.
이 선택이 미래의 나를 배신하는가.
그리고 지금의 나를
지키는가, 팔아넘기는가.
예전의 나는 많이 팔았다.
조금만 참으면 나아질 것 같아서,
조금만 더 이해하면 연결이 될 것 같아서,
조금만 더 성숙하면 관계가 유지될 것 같아서.
그 ‘조금’들이 모여
나는 자주 나를 할인했다.
내 시간,
내 감정,
내 침묵,
내 기준.
사람들은 그걸
유연함이라고 불렀고
나는 그 말에 안도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미래의 내가
나를 보며 묻는 얼굴이 떠올랐다.
“왜 거기까지 갔어?”
“왜 너를 그 가격에 넘겼어?”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나는 선택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이 선택이 지금은 편안해 보여도
나중의 나를 지치게 만드는가.
이 선택이
지금은 외로움을 줄여주지만
내 기준을 조금씩 깎아내리는가.
이 선택이
상대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나를 소모시키는 구조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자기 배신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너무 계산적인 거 아니야?”
“사람은 원래 완벽하지 않아.”
“조금쯤은 감당해야지.”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조금쯤’이
나에게는 늘 한 방향이었다는 걸.
항상 내가 더 이해했고,
항상 내가 더 기다렸고,
항상 내가 먼저 정리했다.
그 결과
관계는 유지됐을지 몰라도
나는 조금씩 사라졌다.
그래서 이제 나는 관계를 묻기 전에 나를 묻는다.
이 선택이 미래의 나를 보호하는가.
이 선택이 지금의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드는가.
이 선택을 한 뒤에도
나는 나를 존중할 수 있는가.
만약 아니라면 그 선택은
아무리 그럴듯해도
아무리 감정이 남아 있어도
아무리 이해가 가능해도
나는 선택하지 않는다.
그건 용기가 아니라
과거의 습관이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건 가능하다.
외로운 시간도 견딜 수 있다.
아픔도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나를 팔아넘기며 사는 삶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건 동행이 아니라 거래였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용히 선택한다.
지금의 나를 지키는 쪽으로.
미래의 내가
고개를 끄덕일 쪽으로.
이건 냉정함이 아니다.
이건 자존이다.
그리고 이 선택만큼은
나는 더 이상 협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