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 속에서, 나는 먼저 늙어버렸다

by 헬렌켈러

우리는 같은 시간 속에 있었다.


같은 날짜를 살았고,
같은 밤을 건넜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 안에서
조금 더 빨리 늙어버렸다.


너는 아직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었고
나는 더 이상
기다리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이 차이는 설명할 수 없었다.
설명하려는 순간
나는 너보다 위에 서게 되고
그건 내가 원한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다.
아니,
말할 수 없었다.
같은 시간 속에서
나는 이미 끝을 보고 있었고
너는 아직 시작을 믿고 있었다.
너는 나에게 오늘을 말했고
나는 그 말 뒤에
올 모든 내일을 보고 있었다.


그 내일들 속에는
점점 작아지는 너와
점점 지쳐가는 내가 있었다.


나는 그 미래를
혼자 미리 보고도
끝까지 말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다정해질 수 있었고
그래서 더 조용해질 수 있었다.
그 조용함이
너에게는 차갑게 보였을 것이다.


마음이 떠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마음이 너무 남아 있어서
더 이상 흔들면
부서질 것 같았을 뿐이다.


사랑이 끝난 게 아니라
사랑이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는 시간이 온 거였다.


나는 알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너는 나에게 기댈 것이고
나는 너를 책임지려 들 것이고
그 순간부터
우리는 사랑이 아니라 구조가 될 거라는 걸.
그래서 떠났다.


사랑을 버린 게 아니라
사랑이 나를
사람이 아닌 역할로 만들기 전에.


공항에서
나는 네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보면 무너질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이별은
눈물을 참는 일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미리 떠나는 일이라는 걸.


같은 시간 속에서
너는 아직 나를 붙잡고 있었고
나는 이미 나를 붙잡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시간에 서로 다른 선택을 했다.
너는 아직 내가 필요했고
나는 이제 내가 필요했다.


그 차이 하나로
사랑은 끝나버린다.


나는 네 인생에서
갑자기 사라진 사람이 되었겠지만
너는 내 인생에서
끝내 내가 놓지 않으려다
놓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었다.


같은 시간 속에 있었지만
나는 먼저 그 시간을 떠나왔다.


그리고 그 선택이
지금도 가끔
숨을 아프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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