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by 헬렌켈러



나는 한때
품위라는 말을
아프지 않은 척하는 기술로 배웠다.

불편함을 설명하지 않고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도
아무 일 없는 얼굴을 유지하는 것.

그게 어른이라고,
그게 강함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줄이는 자리에 오래 앉아 있었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책임까지
자연스럽게 떠안았다.

그땐 몰랐다.
그 방식이 나를 지키는 게 아니라
조금씩 사라지게 만들고 있었다는 걸.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품위는 아프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아픈 걸 알면서도 나를 놓지 않는 태도라는 걸.

조금 더 이해할 수도 있었고
조금 더 버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관계는 유지되고
나는 점점 흐려졌다.

그래서 멈췄다.

차갑게 보였을지도 모르고
빠르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사랑을 증명하느라
나를 훼손하지 않는 것.

이해받기 위해
존엄을 구걸하지 않는 것.

끝까지 설명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혐오하지 않는 상태로
자리를 떠나는 것.

그건 아주 고통스러운 선택이었다.

품위는 사람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끝까지 자신을 데리고 나오는 힘이다.

나는 그 힘을
눈물로 배웠고
단절로 배웠고

사랑을 내려놓는 순간에 배웠다.

그리고 지금도
그 대가는 여전히 아프다.

다만 그 선택 이후
나는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요즘의 나는 품위를 고상한 말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관계 속에서도
끝까지 나를 잃지 않으려는 아주 조용한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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