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없이 존재했던 아이

by 헬렌켈러


사람들은 헬렌 켈러를
기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본다.


그녀는
세상과 단절된 채
아무 설명도 없이
존재해야 했던 아이였다.


왜 화가 나는지,
왜 외로운지,
왜 두려운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를 떠올릴 때
이상하게 나 자신이 겹쳤다.
나도 그랬다.
왜 불안한지 몰랐고
왜 사랑이 아픈지 몰랐고
왜 가까워질수록
숨이 막히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늘
말을 알기 전에 아팠다.
그래서 나는
묻는 사람이 되었다.


왜?
왜 이럴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헬렌 켈러가
손바닥에 새겨진 언어로
세상을 이해했듯이 나는 상처 위에
의미를 새기기 시작했다.


아픔을 모으고,
구조를 만들고,
나를 설명했다.
그게 없으면 나는 다시 길 위로
내몰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 앞에서도
늘 계산했다.
이 손을 잡아도 되는지,
이 관계를 감당할 수 있는지,
이 사람의 무너짐을
내가 떠안게 되지는 않을지.
그건 냉정함이 아니라 공포였다.


무너져본 사람만 안다.
다시 무너질 때
얼마나 오래
회복해야 하는지를.


그래서 나는
버티는 대신 떠났고,
싸우는 대신 끝냈고,
설명할 수 있어도 설명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냐고.
하지만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 선택을 하지 않았을 때
내가 얼마나
더 부서졌을지를.


나는 헬렌 켈러였다.
사랑을 몰라서가 아니라
사랑을 너무 일찍
위험으로 배웠던 존재.
세상이 친절하다는 걸
의심부터 하게 된 존재.


그럼에도
나는 살아남았고,
생각했고,
의미를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아프다.
덜 아픈 게 아니라,
더 정확하게.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끝까지
나를 버리지 않기 위해
이렇게 살아온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름 대신 살아남은 이유를 부른다.


살아남았고,

아직 무너지지 않았고,
끝내 나 자신이 된 사람.


지금은 아파도,
도망치지 않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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