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한 개는
내가 끝내 받지 못한 사랑의 형태였다
나는
사람보다 개를 먼저 믿는 사람이었다.
말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말로 상처를 주지 않아서였다.
사람은 사랑을 주면서
조건을 붙이고,
개는 곁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그 차이를 너무 일찍 배웠다.
사람들은 밝고 활달한 개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달려오고
항상 꼬리를 흔들고
떠날 생각 같은 건 해본 적 없는 개.
그건 취향이 아니라
기도에 가깝다.
“제발 나를 두고 가지 말아 줘.”
나는
그런 개를 오래 보지 못했다.
귀엽다는 생각보다
불안이 먼저 올라왔다.
나를 너무 필요로 하는 존재는
언젠가
내가 감당해야 할 짐이 된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오래 바라본 개는
늘 조금 떨어져 있었다.
부르지 않으면 오지 않았고
와도 내 다리에 몸을 기대지 않았다.
눈은 나를 보고 있었지만
기대지는 않았다.
그 개가
나와 닮아 있어서
나는 그 개를 좋아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 개에게서 사랑받고 싶었다.
억지로 붙잡지 않는 사랑,
나를 증명하라고 요구하지 않는 애정,
“왜 이것밖에 안 해?”라는 말이 없는 온기.
나는 그런 사랑을 사람에게서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개를 보며 배웠다.
사랑은 소리 내어 달려오는 게 아니라
조용히 곁을 지키는 태도라는 걸.
하지만 그걸 아는 순간부터
나는 더 외로워졌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한 그 사랑은
늘 내가 주는 쪽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 곁에서 항상 조심했다.
너무 기대지 않게,
너무 요구하지 않게,
내가 없어져도
상대가 무너지지 않게.
그건 배려가 아니라 생존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알아버렸다.
기대면 무너지는 자리들이 있다는 걸.
붙잡으면 더 멀어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그래서 나는 먼저 멈췄다.
먼저 물러났고
먼저 이해했다.
그게 사랑이라고 믿으면서.
그래서 내가 좋아한 개는
언제나 내 옆에서 한 발 떨어져 앉아 있었다.
다가오지 않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잃지 않는 거리.
나는 그 거리를 사랑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그걸 차갑다고 말했지만 나는 안다.
그건 상대를 버린 게 아니라
나를 버리지 않으려는 선택이었다는 걸.
지금도 개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한 그 개는
끝내 아무도 키워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개는
사실 나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달려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달려와 주길 바랐던 적도 없다.
대신 같은 속도로 걸어줄 사람을 기다렸다.
그 사람이 오지 않아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다만 더 조용해졌을 뿐이다.
이제는 안다.
내가 좋아했던 개의 유형은
내가 받고 싶었던 사랑의 모양이었고
그 사랑을 끝내 받지 못했어도
그 모양을 지키며 살아왔다는 게
내 인생의 품위였다는 걸.
그래서 아프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에게나 꼬리를 흔들지 않았고
아무 사랑이나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게
나를 이렇게 살아 있게 만들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