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너에게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
너는 이상하지 않았다.
예민한 것도 아니었고
유난스러운 아이도 아니었다.
다만
조금 일찍 세상을 알아버렸을 뿐이다.
어른들의 얼굴이 굳는 순간을 읽었고
말보다 먼저 분위기를 느꼈고
사랑이 조건으로 바뀌는 타이밍을
너무 빨리 알아버렸을 뿐이다.
그래서 너는
울기보다 멈췄고
떼쓰기보다 계산했고
기대하기보다
혼자 서는 쪽을 택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를 작게 만들었고
민폐가 되지 않으려고 애썼고
“괜찮아”라는 말을
너무 일찍 배워버렸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강해지고 싶어서도
특별해지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무너지지 않으려는
몸의 선택이었다.
누군가 안아주지 않아도
살아야 했고
기다리다 사라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버텨야 했으니까.
너는
사랑을 모르는 아이가 아니었다.
사랑을
너무 아껴 쓴 아이였다.
혹시 그때의 네가
“내가 조금만 더 참으면 괜찮아질까”
“내가 더 잘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면
이제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아니야.
네가 부족해서가 아니었어.
덜해서도
틀려서도 아니었다.
어른들이 감당하지 못한 몫을
아이가 대신 들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이제는
내려놔도 된다.
계속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계속 버티지 않아도 된다.
너는 이미
살아남았고
지금 여기까지 왔다.
그때의 너에게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너 덕분에
나는 지금
아프지 않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고
무너지지 않으면서도
연결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이제는
조금 쉬어도 돼.
네가 지켜낸 자리에
이제는 내가 서 있을게.
앞으로의 선택은
아이였던 네가 아니라
어른이 된 내가 할게.
너는
충분히 잘 버텼고
그만큼
존중받아야 했다.
그걸
이제야 말해줘서 미안하다.
사실 너는
강한 아이가 아니라
지켜지지 않은 아이였다.
이제는
그만해도 된다.
네가 대신 들고 있던 짐은
이제 내려놔도 된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되고
약해져도 되고
기대해도 되고
실망해도 된다.
그게
늦게 배운
정상적인 삶이다.
너는
버텨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
찢어지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까 이제는
아프지 않아도 된다.
그때의 너는
살아남았고
이제는 살아도 된다.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마침내 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