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그게 미로인 줄 몰랐다.
그냥 길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복잡할 뿐,
더 가다 보면 중간쯤엔
보상 같은 게 하나쯤은 있을 거라 믿었다.
설명되지 않는 불편함도
과정이라는 말로 넘길 수 있을 거라고
누군가는 이미 돌아갔고
누군가는 끝까지 가보라고 했다.
벽은 높지 않았고
어둡지도 않았다.
그래서 계속 걸었다
확신이 아니라 반복이
나를 앞으로 밀고 있었다.
나는 길을 찾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성실하게 헤매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출구보다 덜 아픈 쪽을 고르고 있었다.
막다른 길 앞에서도
“조금만 더”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그때 알았다.
이건 미로가 아니라
내가 유지해 온 구조라는 걸.
지도를 펼쳤다.
접힌 자국은 늘 같은 곳에서 닳아 있었고
지웠다 다시 그은 선 옆에
내가 머물렀던 자리들이 남아 있었다.
정답은 없었다.
다만 기대를 미룬 곳,
말하지 않은 채 넘긴 곳,
의심을 설득으로 덮은 자리들이
한 방향으로 이어져 있었다.
출구는 더 가야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여러 번 지나쳤던 곳 옆에 있었다.
보지 못한 게 아니라
선택하지 않았던 자리.
미로에서 나오는 건 용기가 아니라 포기였다.
이 길이 나를 데려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끝까지 인정하는 일.
극적인 순간은 없었다.
한 발 물러섰고
다시는 그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남는 건 공허가 아니다.
내 삶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