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는 게 고통이라는 엄마

by 공글이

어제는 엄마와 동해선을 타고 부전역을 다녀왔다.

부전시장을 둘러보는데 엄마가 빨리 나가자고 하신다.

감각이 예민한 우리 엄마.

좌판에 진열된 생선과 육류에서 비린내를 맡으신 거다.


시장에서 점심 먹자는 엄마 말은 예상대로 불발이다.

시장에 엄마가 갈만한 식당이 과연 있을까?

없지.


주변 자극을 남들보다 더 크게 느끼는 우리 엄마는 걸리는 게 많다.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다.

결국 부전역에서 나만 점심을 먹었다.

예민한 데다 식욕부진까지 왔으니 엄마의 메뉴 선정은 더 까다로워졌다.


전철에서 엄마의 불행 스토리를 돌림노래처럼 들었다.

찐득하고 촘촘했던 엄마의 불행을.

엄마가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던 불행을.

엄마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말했고

나는 사연 있는 여자처럼 눈물을 닦으며 들었다.


엄마의 불행스토리에는 두 주인공이 있다.

한 명은 외할머니고 한 명은 아빠다.


올해 2월, 엄마가 외할머니한테 사과받고 싶다고 전화했더니

아흔두 살이 된 외할머니는

부모가 자식한테 무슨 사과를 하냐,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못 한다고 하셨다.

엄마는 "나는 자식이 그러면 안아줄 건데 자식한테 사과하는 게 자존심이 상하냐"며 전화를 끊으셨다.

두 달 뒤에 조선의 아들로 키운, 외할머니의 하나뿐인 아들이 돌아가셨다.


예순다섯 살이 된 엄마는 사는 게 고통이고 태어나지 않는 게 더 좋았을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우리 집 첫째가 태어났을 때 말고는 살면서 좋았던 때가 없다는데

내가 눈물이 안 나겠나.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엄마의 우울증이 재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