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은 암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표정이 사뭇 편안해 보여 그 이유를 물었더니 경전을 공부한다고 했다.
마침수강중인심리학강의가 종료돼6개월의 공백이 있던 참이라 선뜻 경전 공부를 신청하게 되었다.
가톨릭 신자인 나는 그동안 서너 번의 템플스테이를 경험해불교를 종교적인 개념보다는 철학적 관점으로 생각해 내가 접근하기에 불편한 문제는 느끼지 못했다.
강의들 듣고 도반들과 나누기를 하면서 35년간 관리직에서 몸집을 키운 나는스스로 정한 기본과 원칙이라는 까르마가 상당히심한 꼰대라는 걸 처음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엄하고, 남에게는 늘 관대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관대함 속에도 항상 기본에 준하는 원칙과 정확한 잣대를 들이대 그 관대함마저도 심한 편견이 내재하고 있었다.
바른길이지만 그 바름마저도 남에게 지나치게 강요하면 흉기가 될 수 있는데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 틀에 상대방을 맞추려고만 하다 보니 매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그 불만에 사로잡힘은 나의 무지(無知 : 상대방이 처한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는)에서 온다는 강의를 들을 때마다 오해와 불평불만들이 조금씩 해소가 되었고 내 판단으로 옳다 그르다 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모든 것은 나로부터 오는 것을 자각해 <지금, 여기에 깨어있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경전을 공부하면서 관념론을 거시적인 문제해결이 아닌본질을 꿰뚫어 보라는 설법을 듣고 가난과 굶주림, 기아, 환경문제, 평화와 통일문제에 대한 인식이 실천적 행동으로 서서히 바뀌게 되었다.
EBS 광고 중 굶주린 어린이나 생계가 곤란한 약자들이 나올 때 예전 같으면 남의 나라 이야기로 치부해 영혼 없는 시선으로 채널을 돌렸는데 이제는 남의 문제로만 느껴지지 않고 연기법이 떠올라 상생하려면 지금 바로 나부터 실천해야 된다는 생각에 에티오피아 소녀를 가슴에 품었다.
공부를 마치고 되돌아보니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준 경전 공부가 아니었으면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내 마음속 대들보는 평생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에 뜨끔했다.
수행의 목표는 내 삶이 고통에서 자유로워짐이라 하였기에 오늘도 내가 놓쳤구나, 또 사로잡혔구나, 또 내 판단틀렸다고 느낄 땐마음속 법당에 세워 둔 죽비로 무뎌지는 일상을 사정없이 내려쳐 수행문과 오계를 읽고 또 읽어 붓다의 가르침을 마음속에 새기며 정진할 것이다.
말하기에도 <정어>를 사용해 명령어가 되지 않게 노력하며, 경전에서 배운 <오계>의사상을글쓰기에도 적용해 자기중심적인 아상을 버리고 이웃에 나의 온기를 보탤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