깁스 한 오른발이 목발과 룸조인 되었다
마이클 온다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잉글리쉬 페이션트> 영화를 볼 때마다 랄프 파인즈가 사하라 사막을 건네는 장면이 일상을 계속 방해했다.
불륜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아련한 주인공의 인간적인 갈등에 몰입하면서 사하라 사막에 남긴 그들의 발자국이 내 버킷리스트에 선명한 도장을 찍었다.
백수지만 스케줄이 새끼줄처럼 꼬인 달력을 서너 장 넘겨 빈 공간을 찾아 모로코라고 적고 여행사에 전화를 걸었다.
북아프리카를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 11월이라는 담당자의 말에 낚여 혹시 룸메이트 매칭도 되냐고 물었더니 60대 초반 고객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과한 욕심이 발동돼 나는 50대를 찾는다며 룸 조인을 예약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알려진 유홍준 교수가 썼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단어에 공감하며 여행지에서 보는 법과 보는 눈을 키우기 위해 그 나라의 위치와 기후, 역사, 문화, 종교, 음식 등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서너 번씩 북아프리카와 한국을 오가던 파노라마 같은 계절이 바뀌자 여행사에 룸조인을 확인했다.
"혹시 룸 조인 가능할까요?"
"60대 초반 고객은 벌써 매칭이 되었고, 현재는 70대 중반 한 분 계십니다"
오. 마이. 갓~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마저 거절하면 여행 내내 방을 혼자 써야 한다는 낭패감에 바로 결정했다.
백수가 과로사로 죽는다고 했던가?
가을바람이 떨어진 낙엽을 쓸어가는 속도만큼 바쁘게 걷다 그만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발등이 골절되고 말았다.
파란 하늘이 처음으로 노~랗게 보였다.
바람의 속도로 다녔던 일상은 달팽이 걸음으로 병원을 오가며 물리치료를 받았다.
가끔씩 재활치료실에서 들려오는 곡소리가 부러진 내 오른발을 비트는 상상을 할 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제발 땅바닥 보는 눈을 키우라는 말>로 치환했다.
달팽이가 되어보니 보이지 않던 높은 턱과 계단이 다시 보였고, 거북이와 늘보가 나를 위로하며 과속으로 달렸던 스케줄에 속도방지턱을 놓아주었다.
한쪽 발로 걸을 수 있다는 현실에 감사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취소했던 여행 날짜가 다가오자 깁스한 붕대 사이로 스멀스멀 궁금증이 돋아났다.
70대 중반 룸메이트는 혼자 여행을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