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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 품에 안기다

여권을 넘보는 당나귀

by 유동용

재활이 끝나자 버킷리스트에 찍힌 잉크가 마르기 전 19시간 넘게 하늘을 달려 드디어

카사블랑카 품에 안겼다.




마라케시를 향해 달리는 버스는 이슬람 문화에 기반을 둔 붉은 건물들을 병풍처럼 펼쳐 보였고, 해가 지자 오늘부터 라마단이 시작되었다는 낯선 밤거리는 무슬림들의 아침식사 준비로 바빴다.


이국적인 호텔은 화려한 모자이크 타일의 바닥과 아라베스크 패턴이 정교하게 새겨진 목재 장식 기둥이 멀리서 온 이방인들을 양옆에서 맞았다.

마라케시

유네스코로 지정된 재래시장 수크는 원색의 염료와 수공예품, 가죽제품, 아랍인들의 전통 신발과 페르시안 카펫 등이 이채롭게 진열되어 있었다.

미로 같은 골목을 당나귀가 지나가며 쓰레기를 수거할 땐 내 가방 속 여권이 안녕한지 잘 살펴야 한다는 가이드 당부에 베르베르 상인들이 ‘니하오’와 ‘곤니치와’를 반복하며 손짓하는 호객행위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

-유네스코로 지정된 재래시장 <수크>-

-화려한 염료와 수공예품-


비하야 궁전

근대 모로코 건축과 아름다운 정원을 대표하는 바히야 궁전은 19세기 흑인 노예 출신 시무사가 권력을 잡고 술탄 지위에 오른 후 지었다고 한다.

일부다처제로 4명의 아내와 수십 명의 첩을 거느린 그는 궁전 이름을 아내의 이름을 따서 비하야로 불렀다고 한다.


궁전에 들어서면 정원을 중심으로 분수대에선 물이 넘쳐흐르고 안뜰엔 재스민이나 부겐빌레아 초목들이 수많은 후궁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처럼 무성했다.

방들은 모두 폐쇄적인 느낌으로 창문 대신 천장이 뚫린 창을 통해 공기를 순환시켰고, 벽면엔 코란에서 기안한 켈리그라피와 사람의 형상과 동물을 기하학적인 패턴으로 새겨 신비감을 증폭시켰다.

마조렐 정원

마라케시 도심에 위치한 <마조렐 정원>은 프랑스 화가이자 디자이너인 자크 마조렐이 조성한 정원으로 온통 푸른색이다.


마조렐 사망 후 황폐해질 위기에 처한 이곳을 마라케시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입 셍 로랑은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해 마조렐 정원을 자주 찾았으며, 그의 연인이자 사업 파트너였던 피에르 베르제와 1980년에 인수해 현재는 입 셍 로랑의 묘비가 있어 많은 예술가들이 여행지로 손꼽힌다.


벤취에 앉은 금발의 모델이 그의 로고가 박힌 가방에서 컴펙트를 꺼내 루즈를 바르고 얼굴 매무새를 고친후 번쩍거리는 로고들을 드러내며 묘비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는다.

드러내는 명품의 위력에 다음 여행의 목적지가 드러나지 않는 내 텅빈 가방에 호기심을 가득 불어 넣는다.

-입 셍 로랑의 묘비가 있는 마조렐 정원-


바샤커피

계피계의 에르메스, 마라케시의 핫플 <바샤 커피>이 이곳에 있다는 정보를 듣고 가이드에게 권했더니 어마어마한 오픈런과 대기자 명단에 벨이 울리기까지 n시간 넘게 걸린다고 했다.

나는 아쉬움을 들쳐업고 귀국후 여행의 약발이 떨어질무렵 청담동 지점에꼭 마시자며 벌렁거리는 후각을 달랬다.

-마라케시에 있는 바샤 커피점 <사진은 퍼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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