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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리

색이 다른 물통의 염료를 찍어 모로코 여행을 색칠한다

by 유동용

페즈(Fez)

메디나는 사다리 타기를 하듯 숨은 태너리를 찾아가는 깊고 아득한 색채 여행이다.


블루 게이트 문을 지나면 이슬람을 상징하는 파란색 아라베스크 양식 건물 사이로 거미줄 같은 골목들이 9,000개가 넘어 질레바를 입은 현지 가이드가 없으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거미줄 같은 골목은 적군의 침입시 게릴라 전법으로 싸우기 위한 방어막 이었다고 한다.

가게마다 전통을 이어온 물건들이 형형색색으로 여행객들의 지갑을 넘보고, 여심을 사로잡는 마그넷 신발가게 앞에선 지갑의 아가리가 속수무책으로 벌어진다.

거미의 혈관처럼 퍼진 골목 중앙에는 수 세기 동안 세공사들(세파이)이 두드리는 망치 소리로 요란하다.

반짝이는 반지나 팔찌에 한눈을 팔다보면 가이드의 붉은 갈발을 놓지치 쉬우니 흥정은 금물이다.


외투를 벗어 허리춤에 차고 이마에 찬 땀을 손등으로 훔칠 무렵 역한 가축의 배설물 냄새가 근처에 테러리가 있음을 알려 주었다.

밖에 진열된 가죽제품을 따라 발코니로 올라가면 현지 상인들이 박하잎을 나눠주며 코를 막으라는 시늉을 한다.


이곳이 영상으로만 보았던 천연염색통 테너리란 말인가?


원색의 염료가 담긴 동그란 테너리는 마치 화가가 수채화를 그리다 붓을 물통에 담가놓은 것처럼 화려하다.


나는 테너리의 염료를 찍어 빨간색은 양귀비, 노란색은 사프란, 갈색은 밤 껍질로 모로코 여행을 색칠했다.

-블루게이트-

-테너리-

-가장 오래된 깊고 아득한 메디나 골목-


쉐프샤우엔

1930년대 기독교의 박해를 피해 무슬림(파란색)과 유대인(하얀색)으로 형성된 마을로 디아스포라의 아픔인 이곳은 모로코에서 가장 예쁜 마을로 알려져 있다.


차분한 화이트와 몽환적인 인디고블루의 대비가 골목마다 다른 풍경으로 다가와 모로코의 산토리니로 통한다.


외부의 침략을 막기 위해 실타래처럼 엮인 골목엔 모스크와, 도자기, 양탄자, 향신료, 수공예품과 먹거리, 볼거리가 풍성해 길 고양이들이 카메라 셔터에 익숙한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좁은 골목은 일보일경으로 인생샷을 찍기 위해 많은 인플루언서들이 누르는 카메라 셔터 소리로 요란하다.

어설픈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 사이로 젊은 남자들이 다가와 포토 스폿을 안내하며 사진을 찍어주고 많은 팁을 요구해 잘못 엮이면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이곳은 블루 시티답게 벽과 계단, 길바닥과 간판마저도 푸른색이라 드레스 코드를 잘 맞춘다면 인생샷을 기대해도 좋은 장소다.

-온통 푸른 쉐프샤우엔 마을-


핫산 2세 모스크

이곳은 마크 어빙의 "죽기전에 꼭 봐야할 세계 건축 1001"에 꼽힌 카사블랑카의 랜드마크 모스크로로 유명하다.


‘신의 옥좌는 물 위에 지어졌다’는 코란 구절에 따라 멀리서 보면 마치 사원이 물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하산 2세 모스크>는 모로코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카사블랑카의 상징으로 7년간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대서양 바다 한가운데 세운 200미터 높이의 모스크로 내부는 학교, 도서관, 목욕탕, 컨퍼런스 홀등이 있으며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하산 2세 모스크-


카사블랑카

대서양에 위치한 모로코는 경제의 중심이자 항구 도시로 이슬람 문화와 프랑스 건축양식을 축약해 거리마다 독특한 매력이 풍긴다.

카사블랑카는 왠지 낭만적인 음악이 항구의 물결처럼 흐르는 느낌이 든다.

이는 아마도 버티 히긴스가 부른 영화 <카사블랑카> 노래가 귀에 익었기 때문일 것이다.

헐리우드에서 쵤영한 이 영화는 모로코와 상관이 없지만 카사블랑카라는 지명으로 반세기가 넘도록 사랑받는 음악이다. 마치 김천이 김밥천국을 따서 유명세를 타는것처럼.


저녁을 먹고 커피계의 에르메스 바샤 커피가 못내 아쉬워 지도를 찾아보니 카사블랑카에 달콤커피 1호점 <오션 스토어>와 까르푸가 호텔에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구글 맵을 켜고 호텔을 나와 밤거리를 20분쯤 걸으니 반가운 <까르푸 익스프레스>가 보였다.

선물로 줄 아르간 오일 수량을 정하며 가게 앞에 왔는데 라마단 기간이라 해가지면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문이 잠겨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지만 혹시 몰라 <오션 스토어>를 힘들게 찾았건만 그곳도 금강산은 식후경이었다.


나는 모로코에서 마지막 밤을 카사블랑카 맥주로 마무리했다.


사막에서 길을 잃을 땐 밤하늘의 별을 보며 방향을 찾아가듯 퇴직 후의 시간도 깨진 시간이 아닌 그 한계를 깨고 나올 시간들이다.


다리 골절로 우여곡절 끝에 찾아온 모로코는

퇴직자의 푸석한 사막에서 현직 때 퍼올린 화양연화의 오아시스를 기억하는 추억 앨범이었다.

나는 19시간을 날아왔던 그곳으로 발길을 돌리며,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를 하고 카사블랑카의 코트 속에서 천천히 벗어났다.

-카사블랑카 영화와 그 지역의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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