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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경 Jul 20. 2022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

여행의 끝

     

 매미 소리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고개를 돌려보니 창문을 반쯤은 덮은 커다란 떡갈나무가 눈빛을 반짝이며 손짓을 한다.

 저 나무 위에서 나오는 소리구나.

 갑자기 가슴속으로 뭉클함이 치밀어 오른다. 힘든 여행 뒤에 오는 피곤함 때문일까. 따가운 여름 햇살 머금은 잎새 사이로 배여 나오고 있는 매미 울음소리가 오늘따라 더욱 가슴을 쥐어뜯는다.

 무엇이 저리도 애달파 목이 쉬도록 온종일 울음을 쏟아붓는 걸까. 한 차례 또다시 자지러지는 매미 울음소리 속으로 젖어 몸이 흐느적이기 시작한다. 안타깝고 서럽고 그리고 뼈마디를 저미는 원인 모를 고통들이 세포 하나하나까지 뒤흔들며 달려든다.

 이유도 없이 왜 마음이 허둥거리는가. 가슴속으로 밀려드는 허허로움이 위태로운  뒤흔드는 걸까. 아직도 정착한 미지의 이곳이 낯설어서 서러운 건가. 두고 온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 때문에 오는 안타까움인가.

 까슬까슬한 마루의 촉감이 매미 소리에 부딪 살갗을 타고 오르며 무기력증을 조금씩 밀어낸다.   

 피곤을 떨쳐내 일어나 창가로 간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한껏 발돋움을 한다. 이제는 어느 정도 낯이 익은 아파트 사이로 키 큰 떡갈나무들이 시원한 웃음을 실어 보낸다. 불안했던 마음들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바람이 몰려온다. 푸른 잎새들이 와르르 와르르 웃음을 쏟아낸다. 사방으로 춤사위를 벌이고 있는 나무줄기 위에 몸을 붙이고 있는 매미들의 모습들이 흐린 망막을 뚫고 달려온다. 온몸이 저려 온다.

 저 작은 몸뚱어리 어디에서 저렇게도 애절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는 걸까. 하늘과 땅을 온통 뒤덮어 버릴 정도로 가슴을 찢는 소리. 그 울음 속으로 흘러 들어가 나 또한 오늘은 한 마리 매미가 된다

 단 일주일을 살기 위해 매미는 어두운 땅 속에서 7년 동안 지내야 한다. 연약한  몸뚱어리 하나 움직이는 것도 제 의지대로 못하는 굼벵이가 되어, 가슴속에서 용솟음치는 불덩이를 내비치지도 못한 채 죽음과도 같은 어둠 속에서 지내야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허물을 벗고,

세상 속으로 날아오를 간을 위해 고통과 두려움을 인내한다.

그리고 세상을 보는 순간 소리친다. 살아 있다고 외친다. 온몸으로 절규하며 짝을 부른다. 단 일주일이지만, 왔다간 흔적을 남기기 위해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불어넣는다.

그런 매미의 삶을 생각하니 부끄러워진다. 허둥대는 시선을 둘 곳이 없어진다. 과연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가 스스로 자문하며 얼굴을 붉힌다.

 나는 늘 불만이 많았다. 언제나 투정 부리며 힘든다고 목소리를 있는 대로 높였다. 절망 속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상처 입고 피투성이가 된 만 벌판 한가운데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뿌리마저 흔들려버린 피폐해진 영혼이 지쳐 흐느적이고 있을 뿐이었다.

 이젠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다행히도 편히 앉을 의자가 다. 따뜻한 온기도 느껴진다.

그 온기에 나를 맡겨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쓸쓸한 여행을 끝내야겠다 마음을 먹는다. 눈부신 하늘이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내려다본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다는 듯 다시 매미가 울기 시작한다.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의자를 발견한 것처럼 매미에게도 짝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짝짓기가 끝나면 책임을 다하고, 죽게 된다는 것을 알지만, 매미는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짝짓기는 이 세상에 왔다 간다는 흔적이니까, 오직 그것을 위해 땅 속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냈으니까. 후회 없는  삶이 될 것이다.

 오랜 여행 끝에 나 자신이 너무 작아져 버린 탓일까. 내 엄지손가락보다도 작은 매미. 그 매미가 갑자기 우주보다도 더 커 보인다.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  이제부터는 나를 버리는 연습을 해야겠다. 나만 당해야 하느냐고 따지는 일도 하지 않 것이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것이다. 체념이 아닌 관조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

 나 자신을 태워 다른 사람들에게 환한 길을 열어주고 싶다. 고달픈 일상의 그늘에서 지쳐 허덕이는 이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잡아주고 싶다. 내 오랜 여행에서 얻은 마음 비우기를 이제는 실천에 옮기는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거듭 다짐해본다. 자신을 버리고 남을 위해 살 때 진정으로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는 있다는 것을 가슴속 깊이 되새김질하며.

 하루 종일 울어 젖히던 매미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고 있다. 여행의 끝에 서 있는 나를 깨우쳐 주고 이제는 지쳐 잠이 든 걸까.

 행복의 빛깔을 닮은 노을이 서산에 걸려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아름다운 여름이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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