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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경 May 05. 2022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

오월처럼

  무지가 병을 만든다. 그 무지가 힘없는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열세 살 된 우리 집 고양이가 병원에 입원을 했다. 만성 신부전증이란다, 콩팥 한 개는 아예 망가져서 기능도 하지 못하고, 다른 한쪽도 망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급성이면 회복이 가능하지만, 만성은 그것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아프다고, 병원에 데려달라고, 얼마나 많은 신호를 나에게 보냈을까. 하지만 고양이에 대한 무지로 인해 나는 그것을 몰랐다. 늘 뛰어다니던 고양이가 누워있는 시간이 많은 것을 보고,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만 했다. 만지면 짜증을 낼 때도 귀찮아서 그러는 줄 알았다. 이사 온 낯선 이곳이 나도 적응하기가 힘드는데, 고양이도 그럴 것이다 생각했다. 가만히 놔두는 게 고양이를 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만성 신부전이라니!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사진 속에서 드러난 작디작은 콩팥 한 개가 아예 기능을 하지 못할 만치 망가지고 나머지 한 개도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해 있는 것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났다. 수의사는 그런 나를 위로하였다.

 “그래도 지금까지 사랑으로 키워주셨기 때문에 이 정도까지 잘 지내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너무 부끄러웠다. 고양이가 아픈 것은 모두 나의 무지와 안일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광양에 있을 때도 나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고양이는 혼자 둔 적이 많았다. 시간이 날 때도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 잘 놀아주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미안하고 가슴이 아려오면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격리된 공간 속에서 여리디 여린 발에 링거를 꽂은 채, 앉아있는 고양이가 안쓰러워 손을 내미니까 으르렁 거리면서 하악질을 했다. 속상했을 고양이의 마음을 생각하니 심장이 쓰라렸다. 머리를 쓰다듬자 화가 났는지 고개를 획, 돌려버렸다.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런 고양이를 두고 나오는 다리가 무거워 걸음이 잘 떼어지지 않았다. 낯선 곳에 자신을 버리고 갔다는 생각 하면서, 원망할 고양이를 생각하니 눈부신 봄 하늘이 눈물 속으로 아른거렸다. 

 작년 봄쯤 광양에 살 때 혈뇨를 봐서 병원에 데려간 적이 있다. 그때 의사는 방광염일 것이라 말했고, 약을 지어 주었다. 그 약을 먹고, 혈뇨가 멈췄고, 고양이는 평소대로 잘 놀고 잘 지냈다. 그래서 며칠 전에 혈뇨를 봤을 때도 당연히 방광염인 줄 알았다. 병원에 데려가서 증세를 말하니 방광염일 것 같다고 약을 주었다. 그 약을 다 먹고 낫지 않으면 다시 병원에 오라고 했다.

 약을 먹여서 그런지 저녁에 금방 혈뇨가 멈추고 소변을 잘 보았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소변을 보고는 저녁까지 보지 않았다. 화장실에 몇 번씩이나 들어갔다 나오면서도 소변을 보지 못했다. 다음 날은 아예 소변을 못 보고, 온종일 화장실만 들락거렸다. 밥도 먹지 않고, 물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런데도 병원에 가 볼 생각은 않고, 얼마나 힘이 들까, 생각만 했다. 

 3일 동안 대소변을 못 보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누워만 있는 고양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수의사는 방광이 막혔을 수도 있으니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막혔으면 뚫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워낙 나이가 많아서 마취에서 못 깨어날 수도 있으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24시간 동안 문을 여는 아산에 있는 병원으로 가면서 간단한 수술만 하면 나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간단한 수술이니까 마취만 잘 이겨내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병원에 도착해서 진료를 보던 수의사는 상태가 심각하다고 했다. 피검사를 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초음파를 해서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아마 입원도 시켜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별일 없을 것이라 믿고 싶었다. 초조감이 몰려왔지만 괜찮을 것이라고 나를 위로했다. 그런데 한 시간쯤 후에 나온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만성신부전증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신부전증은 아니지만 신우신염을 몇 번 앓은 적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알고 있다. 그때 나는 너무 힘들어 그 상황을 떠올리기조차 싫을 정도다. 그런데 자신의 증상을 말로 전달할 수도 없었던 고양이를 생각하니 너무 안쓰러워 가슴이 아려왔다. 

 사람은 아프면 스스로 병원으로 가고, 검사를 받고 입원 치료까지 한다. 그런데 고양이는 아파도 말을 할 수가 없다. 고양이의 상태를 살피고 주인이 알아서 병원에 데리고 가던지, 정기적으로 검사를 해서 예방을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양이는 혼자서 감당하며 서서히 죽음 속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다. 

 후회가 몰려왔다. 만약 작년에 혈뇨를 봤을 때 피검사를 해봤더라면, 신장은 망가지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보다 훨씬 더 건강하게 잘 지냈을 것이고, 앞으로도 몇 년 동안은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당진에 이사 와서도 아프기 전에 병원을 찾았더라면, 최소한 한쪽 신장은 건강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후회들이 몰려와 고양이가 너무 불쌍하고, 미안해서 또다시 눈물이 났다. 

 자라나는 아이든 반려 동물이든 무조건적인 사랑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과 관심을 병행해야 한다. 관심 어린 애정으로 지켜보게 되면 아이나 반려동물이나 건강하고 올바른 성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은 멈춰 서서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고 나서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고양이가 아픈 것은 모두가 나의 무지와 안일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숨길 수가 없다. 정말 부끄럽고, 고양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이제 내가 바랄 수 있는 것은 고양이가 기적적으로 회복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건강하게 나머지 생을 잘 살아가는 것이다. 20년을 넘게 사는 고양이도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까지 욕심을 부리고 싶지 않다. 앞으로 3년만 더 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래서 그동안 못다 준 사랑을 다 주고 싶다. 정말로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눈부신 오월의 햇살처럼, 날마다 생기를 더하는 푸른 나무들처럼 우리 고양이도 그렇게 활기차게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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