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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경 Dec 31. 2023

책 읽는 행복

한시와 함께하는 즐거움

                               한시와 함께하는 즐거움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를 읽고


 한시는 선뜻 다가서기에 뭔가 모를 두려움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익숙하지 않은 한자로 써 놓은 것도 그렇고, 한 시 속에 숨어진 오묘한 진리를 파악하는 데도 힘이 들기 때문이다. 

 정경(情景)이나 정황(情況)을 묘사함으로써 시상(詩想)을 일으키는 기구(起句), 시상을 이어받아 전개시킨다는 승구(承句)와, 시상을 변화하여 전화한다는 전구(轉句), 전체의 시상을 하나의 주제(主題)로 묶는 결구(結句) 등을 가진 구성에서 거부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도 한시가 나오면, 그 속에 담긴 뜻을 이해하기보다는 대충 읽고 넘어가는 게 다반사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편협적인 생각이었나 하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 깨닫게 된다.

 이 책은 한시란 얼마나 재미있는 것이며 그 속에 숨겨진 오묘한 진리까지 찾아낼 수 있도록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그래서 누구라도 책장을 펼치기만 하면 끝까지 읽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정도로 한순간에 사로잡아 버린다. 한시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한시 예찬론자가 되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한시란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 책을 읽다 보면 알 수 있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한시를 읽게 되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고, 왜 그런 표현을 했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된다.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내용을 안고 있는 것들도 있는가 하면 참으로 황당하게 느껴지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강일용의      

 飛割碧山腰     

라는 한시이다. 이것만 봐서는 정말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가 없고 왜 그렇게 썼는지 이해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배경지식을 알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강일용은 평소에 백로를 유난히 사랑하였고, 그 백로를 가지고 정말 훌륭한 시를 한 수 짓고 싶었다. 그래서 비가 오면 짧은 도롱이를 걸쳐 입고 황소를 타고 개성 시내를 벗어나 ‘천수사’라는 절 옆으로 갔다. 황소를 타고 비를 쫄딱 맞으며 백로를 구경했던 것이다. 비가 올 때마다 백로를 관찰하였지만 아름다운 시상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백일 만에 그는 이 시구를 얻을 수 있었다.


  飛割碧山腰-푸른 산허리를 날며 가르네     

 그는 이 시구를 얻고 너무나도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내가 오늘에야 옛사람이 미쳐 말하지 못한 것을 비로소 얻었다. 훗날 이 구절을 이어 시를 완성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강일용은 너무도 기뻤던 나머지 구절을 채워 한 수의 시를 완성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을 보면서 나를 완전히 잊는 몰두 속에서만 위대한 예술은 탄생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한시를 읽는 학생이라면 누구라도 공책을 펼쳐놓고 뒷부분을 써보는 행위를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무한한 호기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한 것을 자신이 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지니고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통해 한시를 읽을 때는 무엇보다도 그 시를 짓게 된 배경과 시대적 상황과 숨겨진 뜻을 알아야 한다는 것도 동시에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스키마 이론의 중요성도 깨닫게 된다. 자신이 알고 있는 만큼 이해하고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당나라 대 유명한 시인 두보의‘가을밤’을 봐도 알 수 있다.     

     銀燭秋光冷畵屛

     經羅小扇撲流螢

     天際夜色凉如水

     坐看牽牛織女星     

 이것만으로 봤을 때는 보는 순간부터 답답하고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 답답해진다. 하지만 漢字의 뜻을 알게 되면 풀이하는 데 그렇게 어렵지가 않다.


 은촛대에 가을빛은 그림 병풍에 차가운데

 가벼운 비단부채로 반딧불을 치는구나

 하늘가 밤빛은 물처럼 싸늘한데 

 견우와 직녀성을 앉아서 바라본다.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게 해 준다. 비단부채를 통해 여자는 신분이 높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차갑다는 말은 부채가 필요 없는 계절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방 안으로 들어오는 반딧불이를 쳐내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황량한 들판에 여인의 집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여인은 신분이 높으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고, 황량한 들판에 있는 집에서 쓸쓸하게 견우성과 직녀성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사람과 일 년에 한 번도 만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한 시가 가지고 있는 묘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모두 보여주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찾고 싶어 하고 그것을 찾아가는 데 묘한 희열을 느끼게 된다. 한시도 바로 그런 희열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드러나지 않는 것을 찾으면서 가슴 벅찬 기쁨을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한시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것을 이 책에서는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한시에 대한 <무조건 어렵다>는 선입견을 없애주고, 한시야말로 문학의 가장 깊은 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그런 한시의 깊은 묘미를 깨닫게 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말 쉽고 재미있게 풀어놓고 있다. 그래서 한글만 읽을 수 있으면 누구라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또한 권필의 매화를 통해서는 한시의 또 다른 형식을 보여주면서,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梅 

       梅

      氷骨

      玉腮

     臘將盡

     春欲廻

    北陸未暖

    南枝忽開


      <중략>     

 이 시를 보고 있으면 자신도 한시를 한번 지어보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이 드는 것을 숨길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자신이 생각해 왔던 딱딱한 한시에 대한 거부감의 이미지를 없애주고 신선한 발상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문학 작품들이 시대적 배경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 책 속에서 가장 큰 시대적 배경을 담고 있는 한시는 이달의 濟塚謠이다.      

 白犬前行黃犬隨    흰둥이가 앞서 가고 누렁이가 따라가네

 野田草際塚壘壘    들밭 풀 가에는 무덤들이 늘어섰네

 老翁際罷田間道    제사 마친 할아버지는 밭두둑 길에서

 日暮醉歸扶小兒    저물녘에 손주의 부축을 받고 집에 돌아온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이 한시를 읽었을 때는 무슨 뜻인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제사를 지내러 무덤으로 가는데 개는 왜 데리고 갔으며, 할아버지는 왜 낮부터 술에 취했는지, 아버지는 왜 보이지 않는지 알 수가 없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한시가 쓰인 시대적 배경을 알고 나면 달라진다. 

 이 한시는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 작가 이달은 전쟁에 직접 참가한 사람이다. 그것을 알게 되면 이 시를 단번에 이해하게 된다. 무덤의 주인공은 할아버지의 아들이며 임진왜란에 참가했다가 전사한 것이다. 개들을 데리고 갔다는 것은 무덤이 마을 가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당시에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에 양지바른 산속에 묻어줄 여유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자식의 무덤에 제사를 지내야 하는 할아버지의 가슴은 형언할 수 없을 만치 고통스러웠을 것이고, 술에 취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손주는 아버지의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술에 취한 할아버지를 부축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참으로 큰 비극을 이 한시는 담고 있는 것이다. 이 한시를 이해하고 나면 전쟁이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얼마나 큰 형벌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40여 편의 한시가 더 실려 있다. 그 시 중에는 인간의 욕심을 경계하는 시들고 있고, 욕심 없는 자연을 사랑하고 그것을 예찬하며 그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시들도 있다. 그 모든 한시들의 특성은 하나같이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을 통해서 문학이란 바로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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