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것은 아름답다
염세주의에 빠져 살았던 여고시절, 나는 서른 살에 죽고 싶었다. 불치의 병에 걸려 사람들의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을 감고 싶었다. 그 생각이 깊어지자 서른 살에 죽을 것이라 믿게까지 되었다. 만약 서른 살에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겠다는 마음까지 갖게 되었다.
왜 하필이면 서른 살에 죽고 싶었을까. 자세한 것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서른 살은 더없이 예쁠 때이고, 죽고 나면 사람들이 나의 가장 예쁜 모습만 기억할 것이고, 좀 더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로 인해 그 당시 나는 비극적인 영화와 소설을 좋아했고, 죽음에 관한 시를 읽었고, 주인공이 불치의 병에 걸려 죽는 소설을 썼다. 그리고 몰타섬 방명록에 적혀 있다는 바이런의 시를 거의 매일 읽었다.
차디찬 묘비에 새겨진 이름이
나그네의 마음을 끌듯이
그대 홀로 책장을 넘길 때
내 이름이 그대 수심의 눈동자를 끌어주기를
세월이 흘러 우연히
그대가 내 이름을 읽을 때가 있거든
죽어간 사람을 추억하듯
나도 추억해 주오
그리고 내 마음이
이곳에 잠들었음을 기억해 주오
그 당시 나는 이 시를 외우고 노트마다 옮겨 쓰면서, 내가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죽고 나면,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고 눈물 흘려주기를 바랐다. 그러면 나는 영혼이 되어 그들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행복해할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를 외로움 속으로 가둬놓고, 그것이 내가 걸어가야 할 숙명이라 여겼다. 사람들이 나의 그 외로움까지도 기억하고 알아주기를 기대했다.
그랬기에 나는 결혼에도 당연히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마법처럼 찾아온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고, 세상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딸과 아들을 낳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서른 살에 죽을 수 없다고 여겨진 것이다. 서른 살이 가까워질수록 혹시 죽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두려워졌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땐 딸이 다섯 살이었고, 만으로 서른 살이 되었을 땐 아들이 다섯 살이었다. 난 사랑하는 내 아이들을 두고 죽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두려운 2년을 보내고 나는 죽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살고 싶었다.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서, 잠을 줄이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렇게 나는 시간을 쪼개 쓰며 숨 가쁘게 살아왔고, 지금은 서른의 두 배도 넘는 나이가 되었다. 딸과 아들은 어느새 서른 후반에 접어들었고, 각자의 삶을 살고 있고, 집에는 남편과 둘밖에 없다.
35년이 넘도록 하던 일도 그만두고 집에서만 지낸 지도 어느새 2년이 넘었다. 몇 달 동안은 온종일 무료하게 지내기도 했지만, 이렇게 산다는 것은 나 자신을 욕되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털고 일어났다.
헬스장에 가서 옷이 다 젖도록 러닝머신을 타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다. 그동안 바빠서 읽지 못했던 책들을 마음껏 읽고, 원고지 속에 묻혀 있던 글들을 찾아내어 컴퓨터에 옮기고 있다. 예전에는 잠이 부족해서 걸으면서도 졸곤 했는데, 요즘은 원 없이 잠을 자도 시간은 늘 넉넉하다. 그러다 보니 조급함이 사라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2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낯선 이곳에서의 삶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오로지 나를 위해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영하의 기온 속에서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포근한 집이 있고, 풍성한 식탁을 차릴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사람은 나이가 어리다고 예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아름다워진다고 말이다. 나는 마흔 살이 되었을 때, 서른 때는 예쁘다는 말을 들었는데, 하는 아쉬움을 가졌고, 오십이 되었을 땐 마흔 살 때는 젊었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환갑이 한참 지난 나는 오십에는 그래도 나가면 늙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하고 말한다. 지금 내 나이가 조금만 젊었더라면, 조금만 덜 늙었더라면, 하는 미련을 갖지만 머지않아 올 칠십의 나이에 나는 또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60대로 되돌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사람은 누구나 현재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한다. 조금 더 예뻤더라면,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조금만 더 키가 컸더라면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격하시킨다. 난 젊었을 때 내가 예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고, 못생겼다는 때문에 열등감에 빠져 있었다. 그로 인해 성격 또한 내성적으로 변했다. 사람들이 예쁘다고 할 때마다 얼마나 못생겼으면 위로하느라 저 말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우울해졌다. 그런데 서른아홉 살에 교통사고로 얼굴의 뼈가 산산조각이 나서 병원에 세 달이나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때 면회 왔던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선생님 그 예쁜 얼굴은 어디 가고 이렇게 되셨나요?”
하면서 울먹였을 때 내가 좀 예뻤구나, 하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되었다.
지금 나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코가 낮아지고 오른쪽 얼굴이 아래로 5밀리미터나 내려가서 비대칭이 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내 모습을 사랑한다. 그때 다치지 않았다면, 하는 안타까움이 남아있지만, 이만큼이라도 내 얼굴이 남아있음에 감사한다. 먼 훗날 나는 오늘의 나를 그리워할 것이다. 오늘은 앞으로 올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며 다시는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소망한다. 내가 죽고 난 후에도 사람들이 내 이름을 입에 올리며,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고 기억해 주기를. 정말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었다고 말해주기를. 나를 생각할 때마다, 영원히 철들지 않은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었다고 가끔씩은 그리워해 주기를.
나의 사춘기를 지배했던 바이런의 시를 읊으며 붉은 꽃물을 피워 올리고 있는 서쪽 하늘을 바라본다.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저녁노을이 천상(天上)의 빛처럼 신비롭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축복처럼 내리는 노을을 가슴 가득 껴안으며 생각한다.
저무는 것은 더없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마지막 정열까지 끌어올려 눈부신 꽃을 피우게 하고 향기로운 열매를 맺히게 하는 숭고의 시간이라고. 어두운 밤이 지나고 아침이 찾아오면 밝은 태양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 나의 삶들이 남은 삶들을 이어갈 수 있는 힘찬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