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우임 Feb 18. 2022

라면 예찬

라면은 포기할 수 없다

 나에게는 특이한 식습관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타고난 허약체질이어서 늘 골골했었다. 학창 시절 체육시간에는 스탠드 지킴이였고, 수학여행조차 참석 못 했다. 그런 계기인지는 모르나 이십 대부터 먹거리 선택함에 있어 이상한 증상이 나타났다. 소위 입이 좋아하는 음식은 피하고, 몸이 좋아하는 음식에 손이 간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실천하던 것이 이젠 완전히 습관화되었다. 음식을 보면 ‘맛있겠다. 먹고 싶다.’라는 생각보다 ‘이게 내 몸속에 들어가면 유익할까?’ 하는 논리가 앞선다. 마치 내 머릿속에 AI가 열심히 작동하여 ‘이건 먹어도 돼’ 허락이 떨어져야지 손이 간다. 친구들은 “인생 힘들게 사네.” 하면서 놀린다. 정작 본인인 나는 힘들지 않다. 희한하게도 입이 좋아하는 음식은 더 이상 맛나 보이지도, 먹고 싶지도 않다. 식도락의 즐거움을 포기하자, 몸에도 신호가 왔고 체력이 향상되었다. 탄력을 받아서인지 나의 고집을 꺾지 않고 계속 실천 중이다. 내 안의 그 잘난 AI도 통제 못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라면이다.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지만 위장에 좋지 않다고 해서 멀리하고 있다. 빵 대신에 떡을 먹는다. 국수 대신에 가급적 밥을 선호한다. 그런데 라면만큼은 대체 식품이 없다. 우리나라의 라면은 맛이 일품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누들 제품을 먹어봤지만 한국의 라면과는 경쟁이 안 된다. 한국인들도 줄을 서는 일본의 유명 라멘집에 가서 먹어봤지만 내 입맛에는 한국의 매운 O라면 보다 못하다.      

 라면을 처음 먹은 적이 언제인지는 모르나 내 손으로 생애 처음 끓인 때는 또렷이 기억한다. 아홉 살 무렵, 엄마가 어딜 가셔서 집안에서 동생들과 놀았다. 부엌 찬장에서 라면 한 봉지를 발견한 나는 호기심이 동했다. 엄마가 하시던 것을 몇 번 본 터라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연탄불에 양은냄비를 올렸다. 물이 끓는지 확인하려고 부뚜막에 지켜서 냄비 뚜껑을 열고 닫고를 반복했다. 물이 끓자 라면과 수프를 넣고 또 기다렸다. 젓가락으로 면을 휘휘 저었다. 우리 엄마의 뽀글뽀글 파마머리와 같은 면발이 살아 움직였다. 삼발이 밥상에 냄비를 올려놓고 한 젓가락을 뚜껑에 담아 먹으려는 순간이었다. 첫돌 지난 막내 남동생이 엉금엉금 기어 와서 밥상을 손으로 짚는 바람에 힘없는 밥상이 뒤집어졌다. 라면과 국물이 그대로 동생 허벅지에 쏟아져 화상을 입었다. 병원 치료를 잘 받아서 다행히 흉터는 없다. 그날 나는 엄마에게 등짝을 여러 차례 후려 맞았고, 한 입도 먹지 못한 라면은 방바닥 사방으로 튀어 팅팅 불어 터져 갔다. 라면이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우리 집에서 금지어가 되었다.     

 중학교 때 컵라면이 등장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학교 매점 앞이 장사진이다. 도시락 대신에 컵라면으로 점심을 먹는 친구들이 부러움의 대상이다. 추운 겨울에 따끈한 컵라면의 국물에 알루미늄 도시락통의 식은 밥 한 덩어리 말아서 먹으면 잘 사는 축에 든다. 고등학교 때 라면의 공업용 기름 사용 파동으로 시끌벅적했다. 모회사에서 몸에 좋은 튀기지 않는 면이 출시되었으나 밋밋한 맛에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했다. 식물성 기름의 사용 전환으로 인상된 라면 가격에 분노하면서 고소하게 튀긴 면발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다시 라면에 열광했다. 대학 때 여행을 가면 빠지지 않는 품목이 라면이었다. 끼니로 먹고 술안주로 곁들이고 다음날 아침 해장국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라면의 탱글탱글한 웨이브는 헤어디자이너의 솜씨를 능가하고, 라면 수프는 신의 한 수다. 며느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마법의 조미료다. 김치찌개 끓일 때, 2프로 부족하다 싶으면 수프를 넣는다. 비싼 소고기 육수를 낸 전골에 수프 살짝 뿌려주면 맛이 칼칼하게 살아난다. 조선의 수석 세프 장금이도 수프의 맛 내기는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한국의 라면수프 재료에 이슬람에서 금기시하는 육류고기 성분이 있다. 우리나라는 할랄 제품이 드물어서 아랍 사람들은 한국의 라면을 먹을 때 망설인다. 한국 라면의 환상적인 맛에 못 이겨 몰래 먹는 아랍인들도 있다. 알라의 율법도 수프의 맛 앞에서는 잠시 덮어두나 보다.     

 해외여행 다녀와서 케리어를 현관에 둔 채로 부엌으로 직행하여 제일 먼저 라면을 끓인다. 얼큰한 라면을 한 입 먹는 순간, “역시 한국 라면이 최고야.” 하면서 감탄사가 저절로 터진다. 피곤한 위장을 달래주면서 여행의 마침표를 찍는다.      

 이 정도면 나도 어지간히 라면을 좋아한다. 머릿속으로는 라면과 절연을 하고 싶은데 잘 안 된다. 라면을 먹을 때마다 한쪽에서는 죄책감이 든다. 유혹을 떨칠 수가 없어서 고민 끝에 타협하기로 한다. 영양을 고려해서 갖가지 재료를 첨가한다. 두부, 버섯, 해물, 만두, 묵은 지, 대파, 당면 사리와 함께 끓인다. 주로 건더기만 먹는다. 이것이 나의 레시피이다. 이렇게 하면 나의 AI에게 라면 섭취의 당당함이 생긴다.      

 라면 하나 먹는다고 건강에 당장 뭔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유별나다고 한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고 하듯이, 맛나게 먹은 음식은 스트레스 제로라서 건강에 무해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만의 명품 라면이 탄생된 셈이다. 나의 라면 사랑과 함께 레시피도 개발되어 간다. 라면만큼은 즐기면서 건강하게 오래도록 먹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불국사의 손짓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