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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Feb 19. 2022

감사함을 배워야 할 때

재물을 모으듯 감사함을 지니고 싶다

 해가 짧아지면서 새벽의 어둠은 길어졌다. 새벽 6시에 운동하러 집을 나서면 아직 어둡다. 가을이어도 기온차가 커서 아침저녁으로는 공기가 차다. 아파트 1층 현관문을 나서면 길바닥이 마른 낙엽으로 깔려있다. 마치 눈이 쌓인 모습 같다. 올해는 기온 이상으로 남부지방에서는 단풍을 구경하기가 힘들다. 알록달록한 색을 포기하고 잎사귀들은 말라서 떨어지고 있었다. 걸을 때마다 발밑에서 사각거리는 소리와 감촉이 좋다. 혼자 가을 분위기 내며 아파트 단지 안을 벗어날 즈음 어디선가 바닥 빗질 소리가 들린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가로등 불빛만을 의지한 채 누군가 열심히 낙엽을 쓸고 있다. 경비원 아저씨였다.     

 주민들이 아직 곤하게 자는 시간에도 경비아저씨의 업무시간은 돌아가고 있었다. 매일 수북이 쌓이는 낙엽을 그분들이 청소하고 있었다. 떨어진 낙엽을 보며 ‘이제 가을이다’ 하며 낭만을 즐길 줄이나 알았다. 시멘트 바닥에 겹겹이 쌓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축축한 또 다른 쓰레기가 되어간다는 건 몰랐다. 넓은 아파트 단지 안의 바닥을 청소하는 누군가의 수고를 외면하고 살았다.     

 잘 나가던 여동생이 결혼을 하면서 포물선 내리막을 그렸다. 처녀시절 동생은 금융회사에서 높은 연봉받아가며 어려움 없이 지냈다. 사내 결혼한 제부의 퇴사와 연이은 사업부도로 결국은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다. 빚 청산하려고 동생은 닥치는 대로 일했다. 사무실에서 컴퓨터 자판 두드리며 일했던 동생은 손에 행주를 들었다. 일부러 몸이 고단한 일만 찾아 했다. 동생은 본인이 처한 상황이 힘이 들어 되러 몸을 혹사시켰다. 아무 생각 없이 일을 해야 시간이라도 빨리 간다고 했다. 식당 일이란 것이 손님이 많으면 직원들 몸이 고달프고, 경기가 침체되면 일자리 고용에 불안하다. 동생의 일자리도 위태해지기 시작했다. 그즈음에, 내가 몸담고 있던 회사에서 청소직원 채용이 있었다. 공공기업체라서 일반 회사의 청소원보다는 일의 강도나 급여 면에서 나았다. 고민 끝에 동생에게 지원할 것을 권유했다. 동생은 채용되었고 나랑 같은 빌딩에서 일을 시작했다. 건물 빌딩은 광범위하게 컸고, 나의 사무실과 동생의 맡은 구역이 다르다 보니 서로 부딪힐 경우가 드물었다. 행여 만나더라도 모른 체해달라고 동생이 부탁했다.      

 어느 날 다른 부서에 서류를 전달하러 갔다가 복도 끝에서 재활용 쓰레기통을 정리하는 동생을 보았다. 직원들이 아무렇게나 버린 쓰레기들을 동생이 일일이 분리하고 있었다. 동생이 불편해할까 봐 나는 그냥 지나쳤다. 몇 달 후 동생은 나의 사무실 층으로 배정을 받아 일을 했다. 한 번은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동생이 바닥에 구부리고 앉아 고무장갑을 끼고 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었다. 차마 화장실 이용을 못하고 얼른 나와 버렸다. 내 눈으로 안 봤으면 모를까, 여간 맘이 편치 않았다. 동생이 화장실 청소를 마친 후에 나는 조심스레 다시 화장실에 갔다. 동생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듯 화장실은 우리 집 안방보다 깨끗했다. ‘계집애, 대충 해도 될 터인데. 몸 아낄 줄을 몰라.’ 괜히 속상했다. 동생이 말끔하게 해 논 화장실은 금방 어지럽혀졌다. 직원들이 아무렇게나 버린 화장지는 바닥에 뒹굴었다. 세면대는 물이 사방에 튕겨 주위가 흥건했다. 내가 주섬주섬 핸드 티슈로 세면대 유리와 바닥을 닦았다. 여직원이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놀라며 “선생님, 여기서 뭐 하세요?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알아서 하는데 손 더러워지게 맨손으로”      

 동생에게 커피 한 잔 하자고 메신저를 보냈다. 사무실 직원 한 명이 아기 돌잔치 떡을 돌려서 떡 두 개를 챙겼다. 마침 휴게실에 아무도 없었다. 동생이랑 단둘이 남의눈을 피해 앉았다. 떡을 건네며 “일 안 힘드니?” 나의 물음에 “할 만하다. 여기 일이 식당 일에 비해 편하다. 나 신경 쓰지 마.” 동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동생은 웃고 있는데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은 하지만 거짓말이다. 그 뒤로 나에게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화장실을 아주 조심스럽게 사용한다. 정부 방침에 따라 동생은 용역에서 직접고용으로 전환되어 근무처우와 복지가 나아지고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되었다. 나는 계약이 만료되어 그곳을 나왔지만 동생은 즐겁게 근무하고 있다. 이제는 빚도 다 갚고 저금을 한단다. 우린 그것으로도 감사하며 만족한다.      

 무심코 지난 치는 일상에서 우리는 감사함을 모르고 지낸다. 거리는 당연히 깨끗해야 하고, 화단은 정리가 되어야 하고, 공중화장실은 깨끗함이 당연한 줄 알았다. 내 돈 지불하고 받는 서비스에 고마움보다는 최대한 쥐어짜서 더 누리려는 놀부 심보를 가졌다. 우리들이 누리는 편리함 뒤에 숨은 누군가의 불편한 수고를 무시했다. 지인 중에 자녀가 승무원이다. 그분은 비행기 탈 때마다 딸이 생각나서 어지간해서는 승무원에게 별도의 서비스 요구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래서 피가 무섭다는 말이 있나 보다.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넉넉히 가지는 연습이 필요할 때이다. 재물을 모으듯 감사함을 지니고 싶다. 잘 지켜지지 않아 반성을 거듭한다.     

 오늘 새벽에도 경비원 아저씨는 대나무 빗자루로 바닥을 쓰셨다. 밤사이 내린 이슬로 축축하게 땅에 붙은 낙엽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낙엽 밟는 낭만은 산으로 가서 즐겨야겠다. “수고하십니다” 인사를 건넸다. 손 시릴 텐데 다음에 핫 팩이라도 하나 드려야겠다.     

                                                                                                                                             202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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