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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Feb 20. 2022

내 나이가 어때서

무얼 하든 딱 좋은 나이인데

 면접을 보고 나왔다. 태연히 차를 몰고 달리다 길가에 주차하기 편리한 카페가 보여서 차를 세웠다. 이른 시간이라 카페 안은 조용하고 종업원은 오픈 준비로 바쁘다. 커피 한 잔 주문하고 창가 자리에 앉아 정장 재킷을 벗었다. 몸을 꽉 죄는 코르셋을 벗은 거 마냥 홀가분하다. 긴 한숨과 심호흡이 교차했다.     

 여자는 망각의 동물이라서 첫 번째 출산의 고통을 잊고 둘째, 셋째의 자녀를 낳는 다더니 나의 상태는 더 심하다.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겠노라 다짐하곤 한 달 만에 또 학교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면접을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는 늦었다. 친절하게도 직원이 커피와 쿠키를 나의 자리까지 가져다주었다. 입안에서 달달한 쿠키와 섞인 커피의 맛은 쓴 지 단지 구분이 안 된다. 내 기분이랑 똑같다.     

 결혼 후 2~3년의 휴직기간 후 나의 직장생활은 경력단절보다는 IMF에 밀려 계약직 인생의 연속이었다. 정규직을 기대하기보다는 계약직이라도 보다 나은 조건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시간과 돈을 투자해 대학원도 졸업했고 자격증도 무려 열 개나 땄다. 경력도 뒤처지지 않게 골고루 쌓았다. 이력서 한 페이지가 모지랄 정도다. 30대 초반까지는 경력사항에 채울 만한 게 없어서 서류전형에 종종 미끄러졌다. 학력도 올리고 스펙도 어느 정도 만들었는데 복병이 딱 버티고 있었다.      

 시간보다 일찍 지정된 면접대기실에 도착했다. 문을 여는 순간 나의 후회는 이미 버스가 지난 후였다. 20대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응시자들은 초조하게 자리에 앉아 예상 질문 답변을 연습했다.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자식뻘 되는 얘들이랑 뭔 영광을 보겠다고 꾸역꾸역 왔단 말인가’ 순간 멀미가 느껴진다. 면접관들 앞에서 철면피도 두꺼워지는지 떨지도 않고 대답은 술술 나왔다. 한 면접관이 마지막 질문으로 “입사하게 되면 직속상관이 정우임씨 보다 어린데 근무하는데 힘들지 않을까요?” 내가 무슨 대답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1971년생이다. 젠장! 이게 뭐 어쨌다고. 지금의 시간은 1971년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나. 내 나이 먹는데 본인들이 보태준 것도 없으면서 눈치를 주다니 괘씸했다. 정규직과 달리 계약직은 이 삼 년마다 계약을 위해 이력서를 반복적으로 작성한다. 젊은 날엔 스펙이 부족하다고 타박하더니 실컷 채우고 나니, 이젠 나이 많다고 토를 단다.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셔본다. 여전히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삼 년을 어느 대학의 연구센터에서 근무하면서 20대 직원들과의 세대 차이를 극복 못하고 나름 힘든 시간을 보낸 뒤, 이젠 학교는 안녕이라고 결심했다. 우연히 공고를 보게 되었고 오래전 했던 업무랑 거의 흡사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지원서를 제출했고 면접까지 본 거다. 학력과 경력이 부족하다면 어떻게든 만들어 보겠지만, 나이는 어찌할 방법이 없다. 면접대기실에서 난 젊은이들의 자리까지 탐내는 욕심쟁이 기성세대가 된 거 같아 얼른 자리를 뜨고만 싶었다. ‘내 사전에 이제 이력서는 없다’ 하면서 커피 잔을 내려놓는다.      

 예상에 없던 긴 휴가가 생겨 딸아이가 있는 삼 년 전에 호주에 갔었다. 호주에 처음 오는 엄마를 위해 딸이 알차게 관광코스를 짜 두었다. 돌아다니다가 달달한 것이 먹고 싶어 아이스크림 가계에 들어가 입맛대로 주문했다. 백발의 허리까지 구부정한 할아버지가 아이스크림을 퍼 담아 주셨다. 가계의 주인인 줄 알았는데 직원이라고 했다. 깜짝 놀란 나에게 “호주에서는 나이 상관 안 해. 몸만 건강하고 본인의 의지만 있으면 채용에 큰 문제없어.” 딸이 설명해 주었다. “엄마가 호주로 이민 와야겠구나. 이곳이 딱 내 스타일이네.” 하면서 까르르 웃었다. 정말 이민 오고 싶었다. 계급장 떼고 남의 눈치 안 보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부러웠다. “엄마, 지금까지 고생하고 막상 일을 손에서 놓으려니 억울하겠다. 어쩌면 맘껏 일 할 수 있는 나이인데.” 딸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렇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아무런 제약 없이 활발하게 일할 수 있는 나이이다. 아이들이 커서 육아부담, 집안일 걱정 안 하면서 야근조차도 거뜬히 할 수 있다. 빠듯한 생활고에서 벗어나 경제적으로 안정된 터라 높은 임금을 바라지도 않는다. 세월에 뼈가 굵어져 웬만한 불평등한 근무조건에도 토 달지 않고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가사 노동에 길들여져 너 일, 나의 일 가리지 않고 해치운다. 다양한 경력을 기반으로 노련하게 업무 처리하는 기술도 가졌다. 이 만큼 최적화된 일꾼이 어디 있으랴. 청년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배가 망망대해를 항해할 때 포지션과 각각의 위치에 맞는 역할이 필요하다. 내 딸아이 또래들이 희망하는 일자리를 내가 넘보는 게 아니다. 단지 내가 하고픈 일을 할 수 있도록 열어두면 좋겠다. 내 나이가 어때서, 일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이력서를 다시는 쓰지 않겠노라고 맘먹은 내가 잘 지킬지는 모르겠다. 해를 거듭할수록 건망증이 는다.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때 즐거운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살아왔다. 이젠 그걸 찾고 싶다.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시간보다도 앞으로 다가오는 시간이 더 소중하고 설렌다. 나에게는 아직 채워야 할 스펙이 남아있다. 남에게 평가받을 필요 없는 온전히 내가 즐길 스펙이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무얼 하든 딱 좋은 나이인데.”

                                                                                                                       2021.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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