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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Feb 22. 2022

복숭아 통조림

아버지의 사랑은 유통기한이 없다

 달력을 또 한 장 넘겼다. 벌써 7월이다. 일 년의 반이 달아난 기분에 씁쓸하다. 장마와 더위로 여름을 어떻게 날까나 근심도 생기지만 그래도 좋다. 내가 좋아하는 여름철 과일을 맘껏 먹을 수 있다. 가을에 수확하는 과일도 맛나지만, 땀 많이 흘리는 한 여름 무더위에 먹는 과일은 보약 같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신 과일을 좋아한 나는 이맘때에는 밥보다 과일을 더 많이 먹는다.      

 저녁 산책을 마치고 귀가 길에 마트에 잠시 들렀다. 폐장 시간을 앞두고 마트 직원의 깜짝 할인 멘트가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왔다. “산지에서 올라온 싱싱한 복숭아를 10개에 만원, 10분간 판매합니다. 서두르세요.” 아줌마의 본능에 따라 판매대로 달린다. 사이즈도 작고 흠집이 조금 있는 백도였다. 가성 비 대비 괜찮아서 봉지에 주섬주섬 담았다. 카트를 밀며 매장 안을 돌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복숭아 통조림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 시선에 밀리어 구석 데기에 진열되어 있었다. 한 개를 슬그머니 카트에 담았다. 함께 간 이웃 엄마가 “요즘 누가 복숭아 통조림 먹니? 복숭아 한 창 때라서 입맛대로 골라 먹을 수 있잖아.” 하며 훈수를 둔다. 촌스럽다고 흉볼까 싶어 카트 안 구석으로 얼른 밀어 넣었다.     

 요즘은 제철 과일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사시사철 웬만한 과일을 맛볼 수 있다. 듣도 보도 못 한 수입 과일까지 떡하니 과일코너를 장악했다. 어린 시절 눈으로만 보고 침 흘렸던 바나나는 뒷방 늙은이가 되었다. 동남아 가면 발에 이리저리 치이는 망고는 여기서는 상전이다. 사람만 시대와 장소를 타고나야 하는 게 아니라 과일도 그런 거 같다. 복숭아 통조림도 한 때는 바나나와 같이 귀한 몸이었다. 병문안 갈 때 빠지지 않은 품목이었다. 초대받아 남의 집 방문할 때도 선물용으로 봉숭아 통조림이 등장했다.     

 병치레가 잦았던 나는 입이 짧았다. 한 번 아프면 몇 날 며칠을 누워만 있었다. 엄마가 흰 쌀죽을 쑤어 주어도 한 두 숟가락만 겨우 먹었다. 지금 같으면 병원 가서 링거라도 맞았겠지만 그 시기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입맛이 없어 생으로 굶었다. 아버지가 퇴근 후 나를 깨웠다. 누렇게 뜬 나는 맥없이 앉았다. 아버지가 통조림을 따개로 돌려서 뚜껑을 열었다. 큼직한 복숭아가 속살을 드러낸 채 맑은 설탕물 속에 둥둥 떠 있었다. 수저로 한 입 잘라서 내 입안으로 넣어 주셨다. 달짝지근하면서 탱탱한 복숭아 살을 씹었다. 물도 제대로 못 삼키던 나는 그날 밤 통조림 한 캔을 다 먹었다. 기력을 회복한 나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 후로 내가 아플 때마다 아버지는 복숭아 통조림을 사주셨다.     

 몇 년 전 건강검진을 받으시다가 아버지는 위암 진단을 받았다. 평소에 자기 관리 잘해 오신 터라 적잖이 놀라웠다. 다행히 초기라서 수술은 잘 되었다. 건강 체질이어도 나이 앞에는 장사 없다더니, 수술 후 아버지는 회복이 느렸다. 식이요법은 둘째 치고라도 밥맛을 잃으셔서 체중은 급격히 감소했고 면역이 떨어져 청력에도 문제가 생겼다. 기력이 날로 쇠잔해지셨다. 앙상하게 야위어만 가셨다. 이래서 암이 무섭구나 싶었다. 엄마가 온갖 별미를 만들어 드려도 손 사레 치셨고 하는 수 없이 수액으로 영양보충을 했다. 어느 날 여동생이 유기농 매장에서 복숭아 병조림을 사 왔다. 아버지가 한 입 맛보시더니 더 달라고 하셨다. 깜짝 놀란 우리들은 신기하게 지켜봤다. 아버지는 퇴원 후 첨으로 뭔가를 맛나게 드셨다. 진작 사드리지 못 한걸 후회했다. ‘아버지도 나처럼 복숭아를 좋아하셨구나.’ 우린 아버지가 뭘 좋아하시는지 모르고 살았다. 아버지는 무언가 요구한 적도 없었고, 항상 자식들 먼저 챙겼다. 아버지는 아무거나 다 잘 드시는 줄로만 알았다.     

 수술 후 특별히 관리해야 하는 오 년의 시간도 훌쩍 넘기고 아버지는 팔순을 내다보신다. 고봉으로 드시던 밥은 이제 절반밖에 드시지 못한다. 저녁 끼니때마다 즐겨 드시던 반주도 끊으셨다. 병원에서 금기시하는 식단 제약으로 먹는 재미를 잃으셨다. 건강 안부를 묻는 우리들의 전화에 아버지는 웃으시며 “내 나이 되면 세상을 서비스 덤으로 사는 거다. 크게 욕심 없다. 너무 걱정마라. 너희들 건강이나 챙겨라.”라고 하신다. 엄마는 여름이 되면 수박보다 복숭아를 박스째 산다. 아버지 밉다 하면서도 챙길 건 다 챙겨 드리는 엄마가 귀여우시다. 지난해 두 분은 미리 준비하신다며 나란히 영정사진을 찍으셨다. 보건소에 가셔서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에 서명도 하셨단다. 표정관리 안 되는 우리들 앞에서 엄마가 “수의 만들면 오래 살듯이, 요즘 유행은 그런 거 미리 해두면 오래 산다더라.” 하시며 웃는다.     

 마트에서 장 본 것을 정리했다. 복숭아는 냉장고 야채 통에 가지런히 두었다. 이삼 이네에 먹어 치워 질 것이다. 남이 볼까 싶어 얼른 계산하고 장바구니에 담았던 통조림을 꺼냈다. 유통기한이 일 년이다. 원터치라서 개봉하기도 편리하다. 아버지는 자그마한 통조림 따개로 힘주어 어렵게 뚜껑을 따곤 하셨는데 말이다. 어린아이 궁둥이 반쪽 같은 모양의 하얀 백도가 살포시 앉아있다. 한 입 베어 먹어보니 맛있다. 그 옛날 아버지가 손수 떠먹여 주셨던 그 맛이다. 이 맛과 함께 아픈 딸아이의 입에 복숭아 넣어 주셨던 아버지의 사랑은 유통기한이 없다. 엄마는 설탕이 몸에 안 좋다는 이론을 내세워서 그냥 생으로 드시기를 고집하신다. 도매시장 가면 통조림용 복숭아를 판다. 이번 여름이 가기 전에 한 박스 사 와서 설탕 넣고 달달하게 졸여볼 참이다. 엄마 몰래 아버지랑 나눠 먹어야겠다.  

                                                      2021.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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