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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Jun 15. 2022

딸을 만나러 가는 길

나의 그리움이 오고 있다

 딸에게서 연락이 왔다. 호주 국경이 열렸단다. 코로나로 2년간 닫혔던 하늘 길이 뚫렸다. 이 날을 기다리며 백신도 서둘러 접종했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중 접한 소식에 나는 흥분되었다.     

 오미크론 대유행으로 불안한 매일의 시간 속에서 나는 하나씩 준비를 했다. 나라 간 이동을 하는 데에 코로나 이전과는 많은 것이 변했다. 직항노선이 아직 운항되지 않아서 싱가포르 경유를 선택했다. 관광비자 외에 추가로 발급받아야 하는 것도 있었다. 각종 증명서들을 프린트하고 체크해 가면서 짐을 꾸렸다. 예전에는 비행기 티켓만 준비하면 되던 것을, 이제는 성가실 정도로 입국 서류가 생겼다.     

 출국 일을 한 달여 남겨두고 나는 꼼짝 않고 집에만 있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코로나 확진될 정도로 연일 계속 최고 기록을 세웠다. 가까운 지인들을 포함하여 동생네까지 확진이 되었다는 소식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았다. 준비성이 빠른 딸은 나와 같이 호주 국내여행을 위해 시드니와 멜버른행 비행기와 숙소를 이미 예약한 상태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지정된 날짜에 무사히 인천공항 출국장을 나서야만 했다. 온라인 마켓으로 장을 보고, 컴퓨터와 폰으로 필요한 업무를 하면서 격리 자와 같은 루틴으로 지냈다. 여권 만료일이 6개월 이상은 남았으나 혹시나 싶어 갱신 발급까지 받았다.     

 그 와중에 건강검진 예약 날짜까지 도래했다. 호주 다녀와서 받을까 고민하다가, 미루느니 얼른 받고 편하게 다녀오자 싶어 검진도 했다. 캐리어는 딸이 부탁한 물건들로 거의 채워졌고 나는 집안 청소와 정리 등으로 출국 날을 카운팅 했다.      

 D-3 일째 되던 날, 낯선 전화번호의 벨이 울렸다. 병원이었다. 지난주 받은 검사에서 이상소견이 발견되었으니 병원으로 내방하라는 것이다. 이 무슨 복병이란 말인가.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진료 스케줄을 짰다. 몇 개월 체류를 계획한 여행을 수정하고 조심스럽게 캐리어 지퍼를 채웠다. 코로나 검사를 위해 새벽기차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서울역에서 내려 무거운 짐을 질질 끌고 인천으로 이동하는 것도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공항에 설치된 임시 병원에서 사전 예약한 코로나 검사를 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카페에서 따스한 차를 마시며 긴장을 풀었다. 공항은 너무 한산했고 폐점한 상점도 많았다. 코로나가 할퀴고 간 공항은 옛 모습을 잃었다. 음성 결과지를 받고 티켓팅까지 또 기다렸다. 지루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티켓 부스가 열리자 승객들이 줄을 섰다. 다들 준비한 서류들을 파일 집에 넣어 한 손에 들고 있었다. 빠트린 것이 없나 하면서 다시 꼼꼼히 점검했다. 이것 또한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내가 내민 프린트 물을 살펴본 뒤 어딘가에 전화를 하더니, 나에게 호주 입국 불가라는 말을 전했다. 머릿속이 새 하얗게 된다는 말대로 정신이 혼미했다. 내가 호주 정부로부터 받은 비자는 구여권으로 받았는데, 새 여권으로는 입국 허용이 안된다고 직원이 전했다. 여권을 모두 지참하여도 별개의 문제란다. 비행기 보딩 시간을 두 시간여 남겨두고 나는 비자를 다시 발급받기 위해 호주 정부 사이트에 접속했다. 손은 떨리고 기입해야 할 정보는 많고 시간은 더 빨리 흐르는 거 같아 심장은 터질 듯이 방망이질 쳤다. 거기다가 시스템 오류까지 떴다. 승객 중에 누군가가 “어제부터 호주 정부 온라인 사이트들이 먹통이더라고요. 해외 접속이 잘 안 되었어요.” 말하며 근심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울고 싶었다. 여기까지 내가 어떻게 왔는데, 난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계속 재시도 버튼을 누르고 다시 기입하고를 반복해서 마침내 승인을 받았다. 승인이 나더라도 한국의 티켓팅 부스까지 전달되는데 또 시간이 걸렸다. 비행기를 놓칠 거 같아 발을 동동거렸다. 직원이 손짓을 했다. 방금 확인되었으니 서두르라고 했다. 짐을 부치고 나는 뛰다시피 출국장을 나와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도 전에, 나는 피로와 긴장의 풀림으로 골아떨어졌다. 기내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을 잤다. 자정에 싱가포르에 도착하여 환승 장에서 또 기다렸다.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나니 그때서야 안심이 되었다. 이제 몇 시간 뒤엔 딸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운이 났다. 꼬박 27시간 만에 브리즈번에 도착한 나는 딸이 일러준 픽업장소로 이동했다. 이곳도 3년 전과 비교했을 시, 승객들이 적어서 입국장 심사 줄이 짧아 시간이 단축된 정도 빼고는 변환 것이 없었다.      

 벤치에 앉아 딸을 기다리며 하늘을 쳐다봤다. 파란 하늘이 어찌나 고운지, 감상하는 거만으로도 이곳까지의 힘든 여정을 씻어주었다. 여행을 여러 번 해봤지만 이번만큼 준비와 도착까지가 힘든 적이 없었다. 돈을 준다고 해도 못 할 거 같다. 딸을 보러 오는 길이어서 가능했다.      

 눈에 익은 차가 한 대 들어오고 있다. 나의 그리움이 오고 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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