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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Jun 16. 2022

친구에게 쓰는 편지

생각나는 친구에게 망설이지 말고 편지 적어 보세요

 며칠 날씨가 흐리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해가 쨍쨍하다. 달력을 보니 오늘이 네가 새 직장에 출근하는 첫날이네. 왜 내가 걱정이 되는 거지. 오랜 경력단절의 시간을 뚫고, 전혀 새로운 분야의 업종에 도전하는 너의 모습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우리가 처음 만난 때가 대학 1년이었지. 촌티 팍팍 나는 새내기들 속에서 서울 말씨를 쓰며 애니메이션에나 나올법한 캐릭터를 한 너의 첫인상은 지금도 생생하다. 서울의 수많은 대학을 놔두고 부산까지 내려왔냐고 우리들이 꽤나 놀렸지. 대학 내내 그럴싸한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영양가 없이 여자들끼리만 몰러 다니다가 덜컥 졸업을 했지. 너는 취업 준비로 서울로 상경하고 나는 부산에서 첫 직장을 다녔지. 나는 혹독한 사회 초년생 시절을 보냈고, 유일한 낙이 퇴근 후 공중전화 부스에서 너에게 전화를 걸어 푸념하는 거였어. 너 또한 취준생으로서 말 못 할 고민이 많았을 터인데도 나의 어리광을 받아 주더라. 네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왔을 때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네가 운전면허시험에 합격한 날 기억나니? 실기시험에서 열 번 넘게 고배를 마시고 응시원서가 첫 장을 넘기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서야 면허증을 손에 쥐었지. 운전연습한답시고 나를 태워 회사까지 출근도 시켜 줬었지. 초보라서 차선 진입을 못해 삥삥 돌다가 회사에 지각할 뻔했었다. 늘 그렇게 단짝처럼 지내다가 내가 먼저 결혼을 하고 나의 결혼식에서 네가 마음이 허전했다는 말을 한참 뒤에 들었던 거 같아. 내가 입덧이 심할 때 맛 난 거 사준 것도, 우리 아이들이 아파서 입원했을 때 병문안 와준 것도 너였지. 그 뒤 너도 결혼을 했고 애들이 어릴 때 같이 데리고 여기저기 많이도 돌아다녔다. 내가 다리 골절상을 입어 한 달 넘게 집콕할 때, 너는 얼마 전 취득 한 중식요리 자격증의 솜씨를 보여주겠노라며 손수 장을 봐서 우리 집에 와서 요리도 만들어 주었지. 내가 우울해하면 너는 내 손을 이끌고 바람도 쐬어주고 맛난 것도 같이 먹어줬지.      

 친구야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 어언 30년이 되었구나. 징글징글 하제?

표정만 봐도 목소리만 들어도 컨디션을 알아채는 우리 사이. 네가 작년에 나의 친정어머니 생신에 맛난 거 사드리라며 봉투를 주었을 때, 나는 지난 일이 떠올라 너무 미안했다. 네가 너의 친정어머니 병간호하며 임종을 지킬 때, 나는 회사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병문안 한 번을 못 가고 뒤늦게 후회를 많이 했었다. 이 못난 친구를 용서해 주라.     

 늘 밝고 먹성 좋은 네가 몇 년 전부터 입맛이 없다며 잘 먹지도 못 하고 꿈쩍도 안 하던 넉넉한 체중마저 줄었지. 심각한 병에 결렸나 싶어 병원 돌아다니며 검사를 해도 특이한 점도 없는데 말이야. 롤로코스트 마냥 업다운되는 너의 감정 기복에 심히 걱정스러웠다. 갱년기의 증세가 시작된 것일까. 사춘기보다 더 무섭다는 갱년기가 이제 우리들을 엄습해 오는구나. 우리가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만나 청춘을 함께 보내고 이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구나. 마음은 아직 캠퍼스를 누리는 새내기 같은데 말이야. 네가 작년부터 부쩍 힘들어하는 모습 지켜보면서 아무 힘이 되어 주지 못하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느닷없이 구직활동을 하는 너의 모습을 보면서 혹자는 오해도 했을 거야. 경제적으로 힘든 것도 아니면서 굳이 일자리를 구하려고 저러나 생각하겠지. 내 친구는 지금 무엇이라도 해서 스스로에게 활력을 넣어주고 싶은 거라고 나는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너는 가족에게 유난히 헌신하며 살아왔지. 큰아들 고3 스트레스를 매일 108배하며 불경을 읊으며 마음을 다스린다고 했을 때, 우리 친구들이 웃으면서 넘겼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네가 아주 힘든 시간을 나름의 방식대로 풀고 있었구나 싶다.      

 친구야,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내가 알고 보아 온 너는 말이야... 얼마나 멋진 줄 아니? 이 터널과도 같은 갱년기 우울증도 거뜬히 이겨낼 거야. 너의 첫 해외여행인 발리에 동행한 사람이 나였고, 우리 참 즐거웠었다. 다시 한번 발리에 가자. 네가 무척 가고 싶어 했잖아. 어제 마트에서 네가 알려준 소스를 사서 샐러드 만들어 먹었다. 역시 미식가의 팁대로 조합해서 먹으니 꿀맛이더라. 언제라도 콜 하면 만나고, 수다도 떨고, 차도 마시고 했는데, 앞으로 내가 심심해서 어쩌니? 지난주에 주문한 고구마가 택배로 왔어. 맛이 설탕처럼 달더라. 너 생각이 나서 좀 챙겨뒀다.     

 오늘 아침 산책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새파랗게 맑더라. 어제의 먹구름은 온 데 간데없더라. 우리가 함께 바라보는 내일의 하늘도 맑겠지. 생전 안 해 본 일을 하면 몸살도 날 거다. 몸 챙겨 가면서 일해라. 고구마 들고 수일 내에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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