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너 나이가 몇 이냐?”
나는 시력이 좋다. 안경이라고는 선글라스를 써 본 경험뿐이다. 언제부턴가 책을 보거나 노트북 작업을 하면 서서히 미간을 찌푸린다. 돋보기를 쓰라고 옆에서 한 마디씩 거들지만 나는 최대한 버텼다.
서랍 속에서 뒹구는 화장품 샘플을 정리하려는데 도통 글씨가 안 보인다. 깨알이라는 표현대로 뭔 놈의 글자가 작은지 아무리 눈을 번득거려도 알 수가 없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확대시켰더니 그제야 보였다.
망설이다 결국 돋보기안경을 맞췄다.
‘가끔 독서할 때에만 쓸 거니까’ 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안경 쓴 나의 모습이 어색했지만 확실히 눈의 피로감도 덜하고 글씨가 또렷하게 보였다. 진작에 착용할걸 뭔 고집을 피웠나 싶다.
어느 날, 방 안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너 안경 쓰니?”
나는 마치 못 쓸지 하다 들킨 사람 마냥 허둥대며 눈 보호 차원에서 쓴다고 둘러댔다. 며칠 뒤에 엄마가 나를 보시더니
“벌써 안경 끼니?” 이번에는 아무런 변명 없이 그냥 웃었다.
저녁 밥상 자리에서 아버지가 물으셨다.
“올해 너 나이가 몇 이냐?”
“한국 나이로 53세지요.” 아버지와 엄마는 꽤나 놀라셨다. 언제 그렇게 나이를 먹었냐고 물으시는데 대꾸할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부모님 눈에는 50을 넘긴 자식이 마냥 젊게만 보이시나 보다. 본인들의 백발보다 자식의 흰머리 새치에 더 예민하시다. 부모님 눈치가 보여서라도 노화의 흔적을 감춰야겠다. 내 나이 먹음의 시간을 붙잡고 있으면 부모님도 계속 지금처럼 내 곁에 계셔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