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에 돌아갈 이유가 생겼다.
사계절이 있는 한국과는 달리 동티는 두 계절뿐이다. 건기에 접어든 이후로 한낮에는 찌는 듯이 덥다가 밤중에는 바람을 타고 옮기는 공기가 시원하다. 시골에 가면 흔히 맡는 풀 내음이 코끝을 자극한다.
세계적인 이상 기후 현상에서 동티도 예외가 아닌지, 소나기 같은 비가 잦다. 건기 같지 않은 날씨 변화에 의아했다.
점심시간 지나서 하늘을 보니 산 중턱에 먹구름이 깔렸다. 거대한 비구름이 스멀스멀 학교를 향해 다가왔다. 한두 방울의 예고도 없이 양동이로 들이붓듯이 빗줄기가 거셌다. 마지막 교시 수업이 끝났지만 학생들도 비 때문에 귀가를 머뭇거렸다. 비가 좀 줄어들기를 바라며 난간에 서서 밖을 보는데 낯익은 녀석이 다가왔다. 오전반 나의 학생인 조아니코였다.
“조아니코, 이 시간에 웬일이니?”
“선생님, 우산 쓰세요.”
학교 근처에 살고 있는 조아니코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니까, 우산 없는 선생님이 생각났단다. 부랴부랴 우산을 챙겨서 일부러 학교까지 와주었다. 고마움을 넘어 찐한 감동이 몰려왔다.
나는 현지인 선임 강사의 후임으로 학기 중도에 교체 투입되어 지금의 반을 맡았다. 강사가 바뀌는 과정에서 혼선이 생기고, 예상치 못한 자그마한 사건들도 발생하면서 나는 홍역을 치렀다. 나 스스로 동티라는 나라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고, 현지언어 습득도 어려웠으며, 그러면서 학생들과 빨리 친해질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쳤다. 반 학생들은 나에게 있어서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로 느껴졌다. 마음 한쪽 구석에는 빨리 지금의 학생들을 졸업시키고 신입생들을 받아서 산뜻하게 출발하고 싶었다.
조아니코는 커다란 우산을 받쳐 들고 나를 호위하며 학교 봉고차까지 데려다줬다.
“선생님, 내일 만나요.” 한국어가 서툴러 더듬더듬 말하는 녀석이 귀여웠고, 손 흔들고 돌아서는 모습이 훈훈했다. 학생들은 열린 마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이 부족한 선생님이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해서 다가서질 못했었다.
여름휴가를 발리에서 보냈다. 내가 없는 동안 우리 반 학생들을 김쌤이 맡아주셨다. 휴가 막바지에 접어들자 짧았던 쉼이 마냥 아쉬웠다. 김쌤이 폰으로 우리 반 학생들 사진을 보냈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애들이 보고 싶어졌다. 그 사이에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나 보다. 동티에 돌아갈 이유가 생겼다.
나를 기다리는 녀석들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