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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Aug 30. 2023

망고가 익어가는 계절, 동티모르 9

어느새 망고가 주렁주렁 달렸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과는 달리 우기와 건기로 나뉘는 동티의 계절 변화는 여전히 낯설고, 그저 나에게는 일 년 내내 여름이다. 교실 창 밖의 커다란 나무를 무심히 쳐다보고만 지나쳤는데, 어느 날 그 나무의 존재가 뚜렷해졌다. 어느새 망고가 주렁주렁 달렸다.     


 주먹보다 작은 크기의 망고들이 풍성했다.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1~2달 뒤에 따서 먹으면 맛나다고 한다. 그런데 저 높은 나무에 있는 망고를 어떻게 따지? 남학생 몇 명이 나서서 나무에 올라가든, 막대기를 후려치든 해서 망고를 따주겠다고 약속했다.     


 내가 과일을 좋아하는 줄 알고는 가끔 학생들이 집에서 딴 과일을 봉지에 담아 수줍게 내민다. 그 마음이 여간 고마울 수가 없다.     


 1교시 수업이 절반이 지나서야 태연히 들어오는 녀석이 있다. 베드로다. 핑계는 다양하다. 집이 멀어요. 차가 막혔어요. 교실에 들어와서도 수업에 집중하기보다는 친구들과 수다 떨기에 바쁘다. 녀석의 책상으로 다가가 보았다. 책이 없었다. 반 학생들이 거의 구매한 3.5불의 문제집이 시험준비에 아주 긴요한데 녀석은 무슨 배짱으로 아직 준비하지 않았다. 돈이 없어서 못 샀다고 하는데, 그건 거짓말이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몇몇 학생들이 돈이 없이 복사를 못 한다고 하면 안쓰러운 마음에 내가 복사를 해줬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실수했다는 것을 알았다. 학생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다 믿는 게 아니었다. 베드로에게 집에서 주로 뭘 하냐고 물으니 부모님 도와서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선생님은 채소도 좋아한다면서 너스레 떨었다. 농담으로 문제집하고 채소랑 물물교환하자며 하하하 웃었다.     


 다음 날, 베드로는 배추 한 포기와 청경채 세 송이를 들고 왔다. 반 학생들이 까르르 웃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는 문제집 한 권을 베드로에게 주었다. 녀석이 부디 열공을 해서 시험에 좋은 결과를 얻으면 좋겠다. 

    

 망고가 며칠 만에 쑥쑥 자랐다. 입안에 침이 고인다. 저 망고를 딸 때쯤이면 이번 학기의 학생들을 졸업시킨다. 신입생들이 그 빈자리를 채울 것이다. 학생들과의 미운 정, 고운 정 나눠가면서 나는 서서히 동티라는 나라에 마음을 열어가고 있다. 시원섭섭함이 교차하면서 나는 오늘도 교실 창 밖의 탐스러운 망고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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