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원 산책, 본디아 29

by 정우임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 주변에 마땅히 산책할 만한 길이 없다. 점심 후 교실에만 있으려니 갑갑해서 목적지 없이 무작정 나섰다. 학교 바로 앞의 대로변은 복잡한 교통량으로 소음과 먼지가 뿌옇다. 조금 걷다 보니 성당으로 보이는 곳에 문이 활짝 열려있다. 입구에 몇몇 사람이 옹기종기 앉아 있다. 들어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간판을 자세히 읽어보니 수녀원이었다.


2년 넘게 이 앞을 무심히 지나다닌 탓에 이곳의 실체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아담한 정원이 이쁘게 가꾸어져 있고 우거진 나무들이 만든 그늘이 땀을 식혀줬다. 나의 존재가 신기했는지 수녀님들이 한 분이 다가와서 인사를 건네셨다. 나는 정중히 인사하며 나의 소개를 했다.

“근처 베코라 한글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입니다. 이곳이 조용하고 예뻐서 지나가다 들렸습니다. 정원 산책을 해도 될까요?”

“Bele bele (가능해요)”

고맙다는 답을 하고 나는 마음 편하게 수녀원 화단 길을 걸었다.

다음날 나는 또 산보를 하러 수녀원에 갔다. 걷기 시작하자마자 이번에는 수녀님 세 분이 오셨다. 나는 어제와 같이 나의 간단한 소개를 하고 산보 허락을 받았다.

그다음 날에도 걸었다. 다른 수녀님을 만났다. 앵무새처럼 나는 나의 소개를 반복했다. 환하게 웃으시며 수녀원 뒷마당 쪽으로도 걸어보라고 추천해 주셨다. 이리하여 나의 산책 반경이 넓어졌다. 탑돌이 마냥 앞마당만 빙글빙글 돌았었는데 수녀원 전체 둘레 길을 걸으니 보는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쓰레기 소각장 근처에 포진해 있는 고양이 다섯 마리, 방목해서 키우는 닭들, 풀밭에서 풀 뜯어먹는 염소 떼들,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수녀님들, 이제는 자연스레 인사를 나눈다. 수녀원에서 기거하는 관리인 아저씨들, 몇 번 얼굴을 보았다고 아주 친절하게 웃어 주신다. 이렇게 해서 나는 수녀원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게 되었다.

저 멀리서 수녀 수련과정에 있는 마들렌이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몸이 불편한 노수녀님을 휠체어에 태우고 산책을 나온 듯했다. 쇠약하신 노수녀님도 따뜻하게 인사를 주셨다.

늘 그러하듯 점심을 서둘러 먹고 수녀원에 갔다. 오전부터 구름이 깔려 있더니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학교로 뛰어 돌아가기에는 빗줄기가 굵었다. 비를 피해 수녀원 처마 밑으로 피신했다. 청소하는 집사 아저씨도, 페인트 칠하던 인부들도 비를 피해 처마 밑으로 모였다. 시원하게 내리는 소나기가 나무들을 씻겨 주었다. 초록이 더 상큼해 보였다. 한국에서는 비를 좋아하지 않은 내가 여기에서는 비를 좋아하게 되었다. 한증막 같은 더위를 씻어주는 비가 고마웠다. 내가 집사 아저씨에게 비가 언제쯤 그칠까요 물으니 곧 그칠 거라고 말했다.

이십여 분이 지나자 빗줄기는 약해졌다. 오늘 산보는 못했지만 나는 오롯이 내리는 비를 감상하며 잠시나마 센티했다.

나는 이렇게 조금씩 동티를 알아가고, 이곳에 정이 들어가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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