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전기인 이야기 - 3

[3. 첫 현장 이야기]

by 종구라기

3-1. 졸은 운전과 금주 선언


1990년 10월, 대한 주택공사에 입사한 나는 고향 전주에 있는 전북지사로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출근 첫날의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문서 복사, 도면 접기, 설계변경 및 물가연동제 검토 등 행정 업무를 맡으며 내게 가장 큰 걸림돌은 '타자기'였습니다.

당시에는 컴퓨터 대신 타자기로 문서를 작성했습니다. 기안자가 종이에 볼펜으로 기안문을 작성하고, 그것을 타이피스트에게 넘기면 타자기로 문서를 완성해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 부서에는 컴퓨터가 한 대도 없었지만, 우리 과장님은 사비로 개인용 컴퓨터를 들여와 업무에 활용하고 계셨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과장님은 내게 타자 학원에 다니라고 권하셨습니다. 말로는 “알겠습니다”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컴퓨터 학원이라면 몰라도 타자 학원이 뭐가 필요하겠어”라고 생각하며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과장님은 포기하지 않으셨고, 이삼일마다 내게 물으셨습니다. 어느 날 퇴근 무렵 지갑에서 3만 원을 꺼내시며 타자 학원비라며 내게 주려고 하셨습니다.

저는 더 이상 과장님 말씀을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저는 돈은 받지 않고 "과장님 알겠습니다. 오늘 당장 학원에 등록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퇴근 후 바로 타자 학원에 등록하였습니다.

1990년 연말에는 부서별 직종별 과별 동기별 각종 회식도 많았고, 저는 술을 먹은 상태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타자 학원에 가서 1시간씩 타자 연습을 하였습니다. 당시 타자 학원에는 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들이 많았으며 여학생 속에서 홀로 술 냄새 풍기며 자판과 씨름을 하였습니다.

학원 강사님에게서 열 손가락 모두를 사용하는 법을 배워 학원 등록 며칠 만에 분당 300타 이상 마스터 하였고 타자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신 과장님에게 감사드렸습니다.

몇 년이 지나자 개인별 컴퓨터가 지급되었고 타자 학원을 다니지 않은 대부분 다른 동기에 비해 타이핑 속도가 월등히 빨라 부러움과 업무처리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1년쯤 지난 1991년 12월, 현장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전주에서 1시간 거리인 군산시 나운동 아파트 건설 현장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안전모를 쓰고 발목에는 각반을 차고 안전화를 신고 무전기를 허리에 차고 철근 냄새와 레미콘 차량이 오가는 공사현장을 밟았을 때, 나는 왠지 모를 자부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주 6일 근무를 했습니다. 토요일은 오후 1시까지 근무했지만, 공사는 일요일에도 멈추지 않았기에, 우리도 돌아가며 일요일 교대 근무를 하였습니다. 신입사원이던 우리는 선배들 대신 일요일 출근도 자주 맡았고, 지금은 당연하지만 휴일 수당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신입이니까 당연한 거야”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게 정리되곤 했습니다.

그때는 억울하다는 생각보다는 ‘이게 사회구나’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묵묵히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 차례도 오겠지, 그런 믿음 하나로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군산 현장까지는 매일 왕복 두 시간이 걸렸습니다. 출퇴근은 전주에 사는 동료들과 카풀을 하였습니다. 운전은 내가 맡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무실 책상에 앉으면 정신도 맑고 눈동자도 빛을 냈지만 이상하게도 운전대만 잡으면 졸음이 쏟아졌습니다. 출퇴근 운전 시에는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 2~3초씩 졸음운전을 참 많이 하였습니다. 나는 졸지 않기 위해 조수석 직원과 말도 해보고, 껌도 씹어 보고, 음악을 크게 틀고, 노래도 불렀지만, 졸음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몇 번은 졸음을 못 이겨서 도로 갓길에 조심스럽게 차를 세우고, 10분 정도 눈을 붙이고 나서야 다시 운전을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결혼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이었고, 책상에 앉으면 멀쩡한데 운전대만 잡으면 이상하게 졸음이 쏟아지는 졸음운전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전주와 군산을 잇는 전군 도로는 봄이면 벚꽃이 만발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다웠습니다. 매일 그 아름다운 길을 달리며 눈앞에 펼쳐지는 꽃길을 보면서도, 정작 나는 눈꺼풀이 무거워 반쯤 감긴 시야로 달리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순간들이었지만, 다행히 단 한 번의 사고도 없이 무사히 그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이따금 그 시절 함께 카풀을 했던 동료들을 만나면, 나의 졸음운전 이야기를 먼저 하면서 지금은 운전하면서 졸지 않느냐 묻곤 합니다.


현장에 첫 발령을 받은 후, 사무실과 협력업체에서는 반갑게 나를 환영해 주었습니다. 환영회에는 당연히 고기와 술이 있었고 나는 신입답게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후였습니다. 대학시절부터 소주 맥주 막걸리 등을 먹었어도 끄떡없었고 지사 내근할 때에도 끄떡없었는데 첫 현장에 와서 환영회 다음 날 계속해서 3번 연속으로 배탈이 났습니다.

창자가 꼬이는 듯한 복통에 식은땀이 흘렀고, 점심시간이 되면 직원들이 식당으로 향할 때 나는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결국 세 번째 링거를 맞으며 누워 있던 병원 침대 위에서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이러다 정말 탈 나겠다.’

그날 이후 나는 술을 끊었고 직원들과 주변에도 금주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당시 현장에서는 "술을 못 하면 일도 못한다"라는 말이 떠돌던 시절이었습니다. 신입사원이 술을 안 하겠다고 선언하니 일부 선배들은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했습니다. 아무리 눈치가 보이고 욕을 먹어도, 금주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습니다. 이후로도 여러 회식 자리가 있었지만, 나는 조용히 자리에만 함께했고, 술잔은 비워두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회식 문화도 바뀌었고 직원들도 내 스타일을 이해해 줬고, 벌써 35년이 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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